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파산했다. 최근 스페인에서 벌어진 금융 위기는 그러한 파산을 문자 그대로 보여 줬다. 유로존 해체가 계속될 경우 유로존의 위기를 구제할 돈은 더더욱 부족해질 것이다. 

이 파산은 도덕적·지적 파산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이 점이야말로 최근 선거들의 가장 큰 교훈이다. 

최근 선거들에는 되풀이되는 뚜렷한 특징들이 있다. 중도파가 선거에서 거푸 패배하고 있다. 이들은 앙겔라 메르켈이 유럽 연합의 제도적 구조로 확립하고자 한 긴축 정책을 지지했고 지금 그 역풍을 맞고 있다. 좌파와 우파로의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다.

매우 소름끼치게도 여러 곳에서 극우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리스 총선에서 7퍼센트를 득표한 황금새벽당은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은 유럽 스타일의 파시스트가 아니다. 이들은 길거리 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강경한 나치다. 

그러나 급진 좌파도 성장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들이다. 그리스의 급진 좌파 연합인 시리자야말로 가장 분명한 사례다. 시리자는 이번 그리스 총선에서 16.8퍼센트를 득표했다.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6월에 재선거를 치를 경우 시리자는 25퍼센트 이상을 득표할 거라고 한다. 

게다가 지난달 프랑스 대선에서는 장뤼크 멜랑숑이 11.01퍼센트를 득표했다. 다른 사례들도 더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신재정협약 합의에 따른 긴축 정책의 부담 탓에 최근 붕괴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갑작스레 집권 연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우파 포퓰리스트 거트 빌더스가 아니라, 급진 좌파인 사회당이다. 

이렇듯 떠오르고 있는 좌파의 정치는 무엇인가? 조금 과하게 단순화하자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런저런 부류의 좌파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시리자에 극좌 그룹들도 포함돼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핵심 세력인 시나스피스모스는 그리스 공산주의 운동에서 좀더 타협적이고 친서방적인 분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분리

멜랑숑은 1997~2002년까지 집권한 재앙적인 좌파 연정에서 장관을 지낸 뒤 프랑스 사회당 내의 좌파를 이끌고서 당을 뛰쳐나온 인물이다. 더욱이 그가 속한 좌파전선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프랑스 공산당이고, 그 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당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프랑스 대선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혁명적 좌파들이 거둔 저조한 성적이다. 혁명적공산주의동맹(LCR) 후보였던 올리비에 브장스노는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공산당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다. 노동자투쟁(LO)도 아를레트 라기예가 대선 후보로 나선 시절에는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브장스노가 속한 반자본주의신당(NPA) 후보와 노동자투쟁의 후보 모두 멜랑숑에 가려서 빛을 잃었다. 

좌파 개혁주의 정당들이 긴축 반대에 앞장서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개혁주의자들은 주류 사회민주주의가 우경화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꾸고 있다.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은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탓에 지금은 “사회자유주의자들”로 불리고 있다. 

멜랑숑, 시리자의 지도자인 알렉스 치프라스, 영국의 조지 갤러웨이 같은 인물들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유권자들의 분노를 친숙한 개혁주의 언어로 또렷하게 표현함으로써 표를 얻고 있다. 에드 밀리반드와 프랑수아 올랑드도 당의 목소리를 바꿔서 이러한 분노에 호응하려 들지만, 사회자유주의와 단절하지 않으려 하므로 자기 왼편에 거대한 공백을 만들고 있다. 

아무튼 긴축에 맞선 저항 덕택에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든지 그보다 더 급진적인 경쟁자들이든지 둘 가운데 하나가 집권할 테지만, 양쪽 모두 독일 정부와 그리고 금융 시장과 협조하라는 커다란 압력에 놓일 것이다. 

그리스 총선이 끝난 뒤 치프라스는 “야만적인” 긴축 프로그램의 폐기를 요구하는 멋진 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 뒤 곧바로 유럽연합의 집행위원장과 의회 의장 앞으로 훨씬 덜 공격적인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이러한 모순적 성격은 모든 개혁주의에 고유한 것이다. 개혁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표현하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저항이 체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제약하려 든다. 그러나 그러한 모순이야말로 혁명적 좌파를 건설해야 할 뚜렷한 이유이기도 하다. 혁명적 좌파는 지금 이처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거대한 운동의 일부여야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독자성도 유지해야 한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