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 때문에 진보 대중이 크게 실망하자, 그 틈을 타서 우파들이 ‘종북’ 마녀사냥에 나섰다. 즉, 우파들은 인민이 굶주리는 와중에 위험천만한 핵무기를 개발하는 독재 국가 따위를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느냐며 남한 NL 세력의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내 NL 세력들이 북한 지배자들을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비방하면서, “종북주의자는 북한에 대해 지도자, 세습, 북한 체제, 주체사상, 인권탄압 등 다섯 가지는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렸다. 〈조선일보〉는 “종북주의를 진보라고 믿는 세력이 한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하다”며 진보 정치인 사상 검증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북한 체제가 매우 억압적이고, 우리가 북한 지배 관료들과 그 체제를 지지할 수는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 관료들을 비난하는 남한 우파들의 행태는 정말 위선적이다. 마르크스가 “한편에 자본의 축적, 다른 한편에 빈곤의 축적”이라고 표현한 상황은 북한 뿐만 아니라 바로 남한의 현실이기도 하다. 

북한 3대 세습 못지 않은 삼성의 3대 세습 등 남한 지배자들도 부와 권력을 자식들에게 되물림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노동자를 착취·억압하며, 민주주의를 거추장스러워하는 점에서도 남한 지배자들은 북한 관료들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김영환, 하태경 등 뉴라이트들은 북한 노동계급이 스스로 해방될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대신에 미국 군대나 남한 군대 같은 외부 세력이 북한 주민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어서, 북한 민중을 더 큰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미국과 남한의 대북 제재와 압박을 지지한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이들의 대안은 남한과 같은 시장 자본주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일부 진보 인사가 우파의 종북 마녀사냥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다. 얼마 전 MBC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 교수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당선자에게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 싶다면 공직을 맡으면 안 된다”며 사상 검증을 요구했다.

이것은 암묵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남한 체제가 북한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 시절에 서유럽 좌파들이 이런 관점 때문에 서방 자본주의에 정치적으로 투항한 바 있다. 당연히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과 북한 내에서 피억압 대중 자신의 저항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결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아예 북한 체제를 남한 자본주의보다 후진적인 봉건 왕조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올바른 분석이 아니다. 두 차례 핵실험에 성공하고 장거리 미사일도 자체 개발했으며,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존재하는 북한이 봉건 사회일 리가 없다.

반대로 NL 동지들이 북한을 남한보다 더 우월한 사회주의 사회로 여기는 것도 많은 문제를 낳는다. 이런 관점은 ‘사회주의’를  정치범수용소, 심각한 기아, 3대 세습 따위와 동의어로 만들어 버리는 우파에 맞서기 어렵게 만든다. 

예컨대 탈북민들의 권리를 방어하지 않고, 사실상 중국 정부의 탈북민 북송을 지지하는 NL 동지들의 태도는 남한 우파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행세하게 해 준다.  

북한을 비판하면 미 제국주의와 남한 우파에게 득이 된다는 식의 논법은 남한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북한 가서 살아라’ 하는 우파의 논법을 뒤집어 놓은 꼴이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즉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원칙에 비춰 보면 북한은 절대 사회주의 사회일 수 없다. 북한 관료들이 세계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의 압력을 받아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해 왔다는 점에서 북한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분석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

따라서 북한 노동계급에게 게걸음과 다를 바 없는 시장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진정한 대안일 수 없다. 북한 노동계급이 스스로 해방을 위해 싸울 잠재력이 있음을 봐야 한다.

우리는 미 제국주의와 남한의 대북 압박에 반대하고 우파들의 ‘종북’ 마녀사냥에 맞서면서도, 북한 지배 관료에 맞선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투쟁을 지지하는 관점에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