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인가?

누구를 위한 자유무역인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전경련과 경총, 또 기업주 신문들은 마치 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폭삭 주저앉을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신인도가 추락하고” “체결 지연되면 국제 미아 된다”는 구절이 신문 주요 면을 도배했다. 마치 노동자들을 걱정해 주는 양 “노동자들의 일자리에도 타격이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같은 주장들은 부풀려져 있다. 칠레에 대한 수출 시장은 5천억 원 규모다. 한국 상장기업의 상위 50위 한 개 회사의 1년 평균 매출이 7조 8천억 원임을 감안하면 칠레 시장의 규모는 작다.

더구나 “전 세계 FTA 190여 건 중 성공한 것은 10퍼센트도 안 될 정도로 체결만 해놓고 중도에서 포기한 것이 대부분”이다.

한·칠레 FTA 비준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은 이것을 “민생 법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이 협정에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조항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모르거나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컨대 ‘위생 및 식물위생조치’는 위생상 질병균을 가진 농축수산물이 들어왔을 경우 수입을 제한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다. 이미 세계보건기구는 이 조치가 발효된 이후 음식 때문에 발생한 질병이 세계적으로 급속히 늘고 있다고 보고했다. 칠레의 농업을 대부분 지배하고 있는 세력은 바로 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광우병으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이다.

더군다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뒤에 줄서고 있는 한·싱가포르, 한·일 자유무역협정 등은 다국적기업한테만 이롭다. 싱가포르 협정의 경우에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독점 시한을 몇 십 년 더 늘려 준다. 의약품 접근권은 더 멀어질 것이다. 이 협정 등에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 제약하는 조항들도 포함돼 있다.

남들 다 하는 시장개방을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개방과 자유무역 정책이 자연법칙과도 같은 거스를 수 없는 그 무엇은 아니다. 미국 자신이 의회에서 무역 협정을 8개 이상 미뤄 두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주들이 자유무역과 시장 개방에 한결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 강대국들은 다른 나라에는 시장 개방을 요구하지만 막상 자신의 이익에 반할 때에는 언제든지 보호무역주의와 무역봉쇄 정책으로 돌아섰다. 그래서 부시 정부는 유럽에서 수입하는 철강에 고율의 관세를 매겼다. 그리고 유럽산 쇠고기에 대해서는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런 자국 중심주의는 자본주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있다. 영국은 19세기에 인도에서 수입하는 품목에 평균 상품 관세의 5∼20배를 물렸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에는 영국 상품의 관세 철폐를 강요했다. 물론 영국이 자유무역을 제창한 때는 이미 산업적 우위를 보였을 때였다.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 자유무역을 강요하기 위해 군사력을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아편전쟁은 단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시장개방과 자유무역 정책들이 전혀 평화스런 자연법칙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19세기 자본주의만의 진실은 아니다. 과일기업 치키타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은 토지 개혁을 단행한 과테말라 정부를 전복시켰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말이다.

무역 분쟁

시장이 개방되면 부가 제3세계로 확대돼 빈곤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구실을 하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10년 동안 무역량은 늘었어도 빈곤 인구는 1억 명이 더 늘어났다.

유럽연합과 일본, 그리고 미국은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제3세계의 생산을 종종 방해한다. 커피 생산을 보자. 수퍼마켓의 커피 제품 가격은 그대로거나 더 높아졌지만 커피 생산 가격은 최근 3년 동안 계속 떨어졌다. 그 결과 제3세계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굶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볼 수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역인가? 무엇을 위한 무역인가?

프랑스의 농민 운동가 조제 보베는 다국적기업과 각국의 정부들을 흡혈귀에 비유했다. 돈 때문에 장만하지 못하는 아주 기초적인 품목들, 예를 들어 결핵 치료용 항생제와 말라리아 예방을 위한 살충제 처리 모기장만 있어도 매년 8백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시민들이 자신들의 소득의 약 0.1퍼센트만 써도 된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이런 식의 예산안을 통과시키려 하지 않는다. 의료와 보건에 1년 동안 쓰여진 돈보다 2백억 달러나 더 많은 돈이 이라크 전쟁을 위해 쓰였다.

그러나 조제 보베는 “흡혈귀 드라큐라는 빛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빛은 이미 존재한다. 다국적기업과 정부들에 항의하는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이 그 빛이다. 우애와 협력에 기초한 삶을 바라는 사람들의 운동은 흡혈귀를 저지할 수 있다.

김어진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