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을 증언해 줄 수 있는 입은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더구나 이 정권은 지난 3년간 산 자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올곧게도 “입을 먹는 입”이었다. 어쩔 수 없이 영화는 주변적 사실들만으로 현실을 재구성한다. 감독들은 인터뷰를 받을 수도 없고, 조사를 토대로 사건 당시를 CG로 재현할 수도 없다. 그녀들은 현실에 어떠한 가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보여 줄 뿐이다.

그래서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뿐이다. 유가족에게 돌아오지 않는 시신, 내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 수사 기록 3천 쪽, 용산을 외치는 목소리를 막기 위해 연쇄 살인 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 같은 것들. 사고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스스로 사고할 만한 여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 여백의 시간을 기반으로 관객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는 사건을 바라보며 감독들과 똑같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의문을 안고 조용히 물 밑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의문은 태생적으로 증폭된다. 화재의 순간은 경찰 채증 카메라에 나타나지 않는다. No Signal 이라는 글자에서, 우리들은 하나의 시그널을 읽어낼 수 있다. 증폭된 의문은 분노를 낳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은 감옥에 있기에, 감독은 진압을 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밖에 없다. 관객의 머릿속에 가득 찬 의문들은 그 말들의 기원을 쫓아간다. “왜” 저 특공대원들은 저렇게 말을 하는 걸까, “왜” 말은 중간에 바뀌었을까, 

저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옥

화재 현장을 담지 못한 카메라는 그 순간의 진실 대신에 그 진실로 다가설 수 있을 만한 주변적 진실들을 전해 준다. 두려움에 떨면서 뛰어나오던 특공대원들에게 가차없이 도로 들어가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이들은 다시 꾸역꾸역 문으로 걸어 들어간다. 건물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고, 이들은 건물 구조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크레인 기사가 한 명도 오지 않았는데 진압은 강행됐고, 화학 소방차도 준비되지 않았다. 이젠 더는 입을 열어 주지 않는 특공대원들의 진술서 말미에는 “지옥”에서 함께 불과 싸웠던 철거민에 대한 동질감이 드러나 있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남일당 건물은 입이 없다. 하지만 용산은 입을 다묾으로써 말을 건네 왔다. 여섯 명의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아침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까지도 우리가 “왜”라고 물어야 한다는 이 엄청난 진실 앞에서 영화는 다시 한 번 침묵하는 용산의 소리를 담는다. 여전히 남일당은 묻고 있다. “왜” 이래야만 했느냐고. 우리는 이 무지막지한 의문의 비합리성 앞에서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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