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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의 괴물, 경쟁과 차별의 근원:
일제고사는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3년 전 일제고사로 징계를 받은 이후 6학년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3년 만에 6학년 아이들을 교과 선생님으로 만나면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3년 전 일제고사는 제 삶에서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습니다. 삶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었고, 그때부터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2008년 일제고사 반대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 영국, 일본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일제고사를 폐지하기로 했고 미국도 반대 운동이 커지고 있다. 교육을 망치는 일제고사 폐지하라. ⓒ임수현

하나 둘씩 떠오르는 일제고사의 기억은 잔인무도했습니다. 불편·부당했고, 우리 모두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아이들도 저도 학부모들도 일제고사 즈음에 벌어지는 온갖 행태에 분노했고, 저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똘똘 뭉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당시 일제고사를 앞두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택권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매주 주말에 주간 계획을 보내는 저로서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예상치 않게 벌어지는 교장·교감·교육청의 행태는 분노스러웠고, 여러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시달리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동시다발

시험 당일 학교 선생님들이 저희 반 아이들의 집에 찾아가서 아이들을 학교로 등교시켰고, 장학사와 교감은 제게 교실 밖으로 나가기를 종용했습니다. 시험 전에는 ‘장학’을 빌미로 교장·교감이 교실로 찾아와 감시하기 일쑤였고, 우리 반의 회장·부회장을 교장실로 불러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교육청 관계자가 아이들 집에 전화를 해대서 학부모들이 분개했던 기억도 납니다. 교육청은 아이들에게 ‘담임 선생님과 1년을 함께 있고 싶으면 시험을 봐야 한다’는 협박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잔인했던 3년 전 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다시금 분노가 끓어 오릅니다. 일제고사를 끝장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악몽은 3년 전에 끝난 것일까요? 올해 6학년 아이들을 보면서 일제고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악몽은 계속될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뭔가 이해되지 않는 6학년 아이들의 갑작스런 변화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3월만 해도 수업이 정말 재밌어서 시간이 빨리 간다며 해맑게 웃던 아이들이 사소한 일로 수업 시간에 짜증을 내고 다툼을 일삼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6학년 아이들의 이러한 변화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며칠 전 아이들과 나눈 대화는 참으로 충격이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말로만 듣던 파행 사례가 버젓이 우리 학교에서 자행되고 있었고, 그로 인한 아이들의 고통·분노·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말에 4~5학년 수준의 문제지를 나눠 주고 월요일에 채점해서 오답 노트를 완성해야 집에 갈 수 있도록 하고, 아무 수업 시간에나 영어 듣기 평가를 하는 등 우리 학교가 ‘성취도 평가’에서 꼴찌여서는 안 된다며 아이들을 다그친다는 것입니다.

학교 연구부장에게 정규 수업 시간에 문제 풀이를 하지 않도록 조처해 달라고 했더니, 열심히 노력하는 선생님들에게 자칫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말과, 남한에 초6과 중3이 있어 북한이 쳐들어 오지 못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농담 메시지만 돌아왔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을 고스란히 초등학생으로 보낸 아이들이 참으로 불쌍합니다. 일제고사가 아주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고 믿는 아이들은 “선생님, 저는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안 나오는 걸 어떡해요? 불공평해요” 하며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날마다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문제 풀이에 시달립니다.

시시포스의 형벌

학교는 희망을 말하는 따뜻한 공동체여야 합니다. 어제의 나를 돌아보며 오늘 더 성장해 가는 곳, 올곧은 가르침과 진정한 배움이 있는 곳,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곳, 내가 소중하듯 다른 사람도 소중하며 배려와 책임을 갖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 미래도 즐거워야 하지만 오늘도 행복한 곳이 학교여야 합니다.

아이들을 줄 세우고, 차별하고, 능력이 다른데도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며 한 명 한 명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그런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을 돕는 곳이 학교여야 하는데, 학교는 지금 제 구실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일제고사가 학교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현장의 괴물, 교육과정 파행 주범, 경쟁과 차별의 근원인 일제고사는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구시대적 패러다임, 구닥다리 시험인 일제고사는 폐지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