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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비정규직과 교사들이 연대해:
‘비정규직 백화점’인 학교를 바꾸자

학교 현장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이미 70여 직종에 15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을 정도로 학교 현장은 그야말로 ‘비정규직 백화점’이 된 지 오래다.

정부와 학교 당국은 학생 수 감소와 교육 예산의 유동성을 빌미로 비정규직 채용을 마구 늘려 왔다. 각 지역 교육청도 ‘학교업무경감 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교사가 담당하던 일부 업무들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왔다. 예컨대, 이전에 교사가 담당했던 ‘방과 후 학교 강사비·수강비 관리’ 업무를 ‘방과 후 학교 코디’라는 이름으로 바꿔 은근슬쩍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해 업무를 떠넘기는 식이었다. 이렇게 정부와 학교 당국은 정규직 채용을 줄이고, 그 자리에 학교 비정규직을 늘려 왔다.

학교장들은 채용 권한을 무기로 자신의 입맞에 맞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용하고, 계약서를 악용하고, 온갖 부당 업무를 강요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을 감수하거나, 교육청 웹사이트에 올라온 또 다른 비정규직 채용 공고를 뒤져야 했다.

3월 17일 ‘2012 총력투쟁 결의대회’에 참가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윤선

지난해 경기도 부천 석천초등학교에서 학생 수 감소를 빌미로 부당해고 당한 이모 조리종사원은 복직을 요구하며 끈질기게 싸운 끝에 “신규 자리가 나면 최우선으로 채용하겠다”는 교육청의 약속을 받아냈지만, 지금껏 이행되지 않고 있다. 신규 채용 공고를 낸 학교에 면접을 봐도 학교장이 채용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취재한 한 초등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0년 이상 사서로 일하던 그는 학교장으로부터 기존 업무 이외에도 온갖 잡다한 업무(예컨대, 청소·교무보조 등)를 강요받다가 결국 사직서를 내야 했다.

사슬

그러나 이런 열악한 상황은 오히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단결을 촉진했다. 온갖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해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학교 현장을 바꾸는 투쟁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순식간에 3만여 명에 이르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올해는 학교 비정규직 관련 노동조합이 연대해 ‘학교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를 결성해 교육과학기술부와 16개의 시도교육청에 역사상 처음으로 임단협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연대회의는 학교장이 아니라 교육감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고용하고, 호봉제를 적용하고, 전 직종을 무기계약으로 전환해 고용불안을 해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방중 근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고, 과도한 노동시간을 조정할 것도 핵심 요구로 제기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사용자는 교육감”이고 “교육감이 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실제 강원·경기·서울 등 일부 진보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이 연대회의와의 교섭을 공고하면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신감은 더 커지고 있다. 교섭에 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광주교육청도 9월부터 정식으로 단체교섭을 시작한다.

그런데도 교육과학부는 여전히 “교육감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억지 부리고 있고, 상당수 교육청이 이에 동조해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충남교육청은 ‘단체교섭 거부 가처분 소송’까지 제기했다.

이에 항의해 연대회의는 서울에서 대규모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6월 27일부터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실시한다.

그동안 차별과 고용불안에 시달려 왔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만큼, ‘학교’라는 한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교사 노동자들의 연대가 중요하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 상황은 언젠가 정규 교사들을 향할 수도 있다. 정규 교사들과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해 투쟁해야 하는 이유다.

전교조 서울지부와 경기지부 등이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연대를 표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나도 우리 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대회 참가와 비정규직 노조 가입을 권하기도 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부천지회 권금자 지회장은 교사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며 이렇게 말한다.

“노동의 고단함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똑같습니다. 한 작업장에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이익을 당하면 교사들이 적극 도와 주고,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노동조합 가입도 권해 주십시오. 특히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단결에 가교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전교조가 연대하고 끝까지 투쟁해 승리를 거뒀으면 합니다.”

그동안 정부와 학교 당국은 직무를 세분화하고 고용과 임금 체계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정규 교사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분열시켜 왔다. 이제 정규 교사와 학교 비정규직이 단결해 분열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교사들이 함께 연대해 학교가 진정으로 인성과 배움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바꿔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