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전국을 흔들었던 화물연대 파업이 운임료 9.9퍼센트 인상을 받아내며 마무리됐다. 이 파업은 이명박 정부와 지배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화물연대 파업 직전까지 정부와 우파는 ‘종북’ 마녀사냥 속에서 사내하도급법 개악, 영리병원 도입, 인천공항 민영화 등의 계획을 쏟아내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무대의 전면에 등장하자마다 상황은 바뀌었다. 2003년에 〈조선일보〉가 말한 대로 “물류를 마비시켜 나라를 결단낼 수 있는 강자들”이 전면에 나서자, 파업 이틀 만에 물류 운송률이 60퍼센트 가까이 떨어졌다. 파업은 비조합원들의 지지와 동참도 끌어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런 식으로 열흘만 파업이 지속되면, 일일 평균 3천3백60억 원의 막대한 피해를 입고 수출 차질액도 4천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화물 노동자들은 탄압과 피해를 무릅쓰고 용감하게 투쟁했다. 이들의 투쟁은 짓눌리고 천대받아 온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대변했고, 경제 위기로 누적된 평범한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를 대변했다.

그래서 이 ‘1퍼센트에 맞선 투쟁’은 ‘99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 공공운수노조는 1천여 명 규모의 연대 집회를 개최했고, 미국의 제2노총인 CTW(Change To Win) 정책국장은 국제 연대 메시지를 전하며 뉴욕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곳곳에서 지지와 연대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자, 정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명박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와 고충을 헤아리는 척했고, 물류협회 사장들을 등 떠밀어 교섭장에 앉혔다. 민주당은 화물연대의 요구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새누리당도 “표준운임제 도입”을 촉구했다.

정부는 우선 화물연대와 동시에 파업에 들어간 건설노조에 대폭 양보해야 했다. 그래서 건설 노동자들은 파업 이틀 만에 승리했다. 정부가 건설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보전을 책임지는 등의 양보를 받아낸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이명박 정부와 운송업체들은 화물연대에도 서둘러 양보안을 제시했다. 이 양보안은 화물연대 조합원 67.7퍼센트의 지지로 받아들여졌다.

이명박의 허약한 실체

일부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새누리당이 승리한 총선 결과와 통합진보당의 위기와 분열에 낙담하며 투쟁 가능성에 회의를 품고 있을 때, 화물연대 파업은 돌파구를 열었다. 이미 보수언론은 “노동계 하투가 시작됐다”며 걱정하고 있다. 〈조선일보〉도 “노동계의 전면적인 실력 행사로 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 정부는 날치기로 추진하던 한일 군사정보협정 체결도 연기하며 체면을 구겼다. 여야가 8월에 MBC 사장 김재철을 퇴진시키기로 했다는 보도도 새어 나오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은 이런 분위기 반전의 고리였던 것 같다.

유로존의 위기 여파로 한국 경제에도 위기감이 감돌고 지배자들의 공격이 준비되는 상황에서, 화물연대 파업과 그 성과는 정치적으로 더 의미있다. 특히 레임덕의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허약한 처지에 있는 지 잘 보여 줬다. 이것은 7월~8월 투쟁을 준비하는 금속노조 등에도 자신감을 줬을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 더 나아가서 더 큰 성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은 있다. 가장 전투적인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악화된 자신들의 처지와 비교해 운송료 9.9퍼센트 인상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표준운임제 법제화를 쟁취하지 못한 상황에서 파업을 끝낼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특히, 파업 효과가 크고 대오가 강력했던 부산과 의왕에서 그런 목소리가 컸다. 이것은 투쟁을 더 전진시키고 싶어하는 가장 전투적인 화물연대 노동자들 속에서 투사들의 네트워크를 건설할 필요를 보여 준다.

화물연대의 투사들은 이번 파업을 통해 새로 가입한 조합원들까지 포함해 조직력을 더 강화하며, 머지 않아 다시 시작될 표준운임제 등을 위한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노무현 때를 돌아봐도 국회에서 민주당의 구실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9.9퍼센트 운송료 인상마저 되돌리려는 시도에도 맞서야 할 것이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활동가들도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열어준 돌파구를 이용해 곳곳에서 투쟁을 전진시키며, 이것을 이명박 정부와 우파에 맞선 정치적 투쟁으로 모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