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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가라앉는 한국 경제

“유럽 재정위기는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기록될 수 있다.”

“이번 위기는 1929년 대공황보다 오래갈 수 있다.”

앞의 것은 지난 6월 4일 금융위원장 김석동이 한 말이고, 뒤의 것은 산은금융그룹 회장 강만수가 6월 5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위태로운 한국 경제 속에서 빚더미에 짓눌린 가난한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윤선

한국 지배계급이 최근의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 상황에서 느끼는 위기감을 이 두 마디 말보다 더 잘 표현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낙관적 전망이 줄을 이었다. 이번 위기의 진앙지인 미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고, 유로존도 남유럽 재정위기를 감내할 만큼 체력이 튼튼하다는 보고서들이 나왔다.

하지만 제비 한 마리가 봄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역설적이게도 이 말도 이미 지난 4월 현 기획재정부 장관 박재완이 언급했다). 지난 7월 2일 미국 공급관리협회는 전국공업활동지수가 5월의 53.5에서 6월에는 49.7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유로존 지배자들도 위기가 그리스에서 스페인으로 전염되자 부랴부랴 스페인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이전 최고치인 2008년의 92.1퍼센트보다 4.8퍼센트포인트나 높은 96.9퍼센트를 기록했다.

수출 증가율은 2011년 3분기에는 21.4퍼센트에 이르렀지만 지난해 4분기에는 9.0퍼센트, 올 1분기에는 3.0퍼센트로 급감하고 있다.

불안한 경기전망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지 못하고 있다. 2012년 5월 설비투자는 전월에 비해 0.8퍼센트, 전년 동기 대비 1.5퍼센트 감소했다.

하우스 푸어

한국 경제가 수출입 급감을 내수 확대를 통해 회복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민간소비를 가늠하는 할인점 매출액의 경우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크게 둔화됐다.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이유들로는 비정규직 증대, 일자리 정체 등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가계부채의 증가다. 2011년 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9백12조 원에 이르렀는데, 1999년 말 2백13조 원에 견줘 7백조 원 가까이 증가했다. 1999년부터 12년 동안 명목 경제성장률 7.1퍼센트보다 가계부채 증가율(12.9퍼센트)이 더 높았다. 가계소득의 증가보다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는 의미다.

ⓒ인포그래픽 김준효(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이라는 의미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규모는 1백50퍼센트에 육박하며 세계 최고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가계부채 중 상당 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다. 2011년 말 전체 가계대출 8백58조 원 가운데 60퍼센트 정도인 5백20조 원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이 중에서 1백조 원 정도가 올해 만기가 된다.

이것은 2000년대 중반 부동산 거품이 한창 고조될 당시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을 샀던 상당수 가구들이 ‘하우스 푸어’로 지내고 있음을 말해 준다.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에도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지 않았던 것은 가계의 원리금 상환 압력이 낮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규제완화 조치들과 함께 은행들이 만기연장을 해 주는 비율이 90퍼센트에 이르렀고, 주택담보대출 중 이자만 내고 있는 대출 비중이 80퍼센트에 이르렀다.

그런데 세계경제와 이와 연동된 한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 한 이런 상태가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 최근에 분명해지고 있다. 부동산 거품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저축은행의 부실이 드러나고 있고, 제1금융권도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에 대한 원금회수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다루는 은행들이 부동산담보대출 조건을 강화하거나 만기 연장을 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체율도 점점 상승하고 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자동차나 반도체 또는 휴대폰 등의 수출 호황과 중국의 경기부양책 덕분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대외적 호조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 등 국내적 불안 요인들까지 더 심각해지는 게 지배자들의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경제 위기는 노동자들에게도 고통이지만 이윤이 줄어들고 심각하면 기업이 파산하는 등 지배자들에게도 큰 고통이다. 이런 위기에 직면한 지배자들이 쓰는 전통적인 수법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 것, 즉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늘리며,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런 지배계급의 행보에 맞서 우리 계급도 정치적·조직적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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