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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둥성 농민공 저항에서 드러난 것

6월 25일 광둥성에서 터진 농민공 시위는 중국 경제가 불안정에 빠져든 가운데 벌어지는 중국 민중의 수많은 저항 중 하나였다. 이 사태는 현지 치안 요원이 중산시에서 농민공 소년을 심하게 구타한 게 발단이었다.

분노한 농민공들이 지방정부 청사를 포위하면서 항의가 시작됐고, 이웃 지역의 농민공들까지 합세하면서 삽시간에 수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이 지역의 농민공들이 평소에 쌓인 울분을 지역 정부와 경찰을 향해 터뜨렸던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잔인한 탄압에도,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 때문에 곳곳에서 저항이 폭발하고 있다. ⓒ사진 출처 중국웨이보

현지 공안당국은 즉시 비상계엄에 들어갔고, 진압 병력 1만여 명을 동원해 이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5명 이상이 숨졌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지난해 광둥성 쩡청 시에서도 치안 요원이 슈퍼마켓 바깥에서 물건을 팔았다는 이유로 임신한 여성 농민공을 폭행해, 1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경찰 건물을 공격하고 무장 차량을 불지르는 등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때도 공안당국의 탄압으로 수십 명이 사망하고 1백 명 이상이 다쳤다.

이 밖에도 지난달에 홍콩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40만 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광저우 시에서는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하는 파업들이 있었다. 즉 “소요 사태” 외에도 농민들의 저항, 노동자 투쟁, 소수민족 반란 등 중국 곳곳에서 다양한 투쟁들이 불거지고 있다.

물론 이 저항들은 개별적으로 자신들의 특수한 상황에 대응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부의 양극화, 부정부패, 노동조건 후퇴 등)이라는 근본 원인은 똑같다.

이제 사람들이 시위 소식을 SNS 등을 통해 알리고 참가를 호소하는 일은 중국에서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다. 신세대 농민공들이 중국 노동자 투쟁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부상해, 경험에서 배우며 투쟁 전술을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 이 덕분에 “파업은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앞으로도 난관은 계속 있겠지만 경제 위기로 노동자 투쟁이 격화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농민공은 누구인가

농민공들은 농촌 출신 이주노동자들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국의 농촌 청년들은 가난에 찌든 고향을 등진 채 상하이에서 홍콩까지 이어지는 연안 지역의 신흥 도시들로 몰려들었다. 농민공들은 저임금을 받고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서방으로 수출할 각종 소비재를 생산해 왔다.

오늘날 농민공은 중국 전역에서 2억 명이 넘고, 광둥성의 경우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그러나 중국의 독특한 호구제는 농민의 도시 이주는 허용하지만 거주권을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농민공들은 도시에서 교육, 의료, 복지 문제로 체계적인 차별을 받고 있다.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처럼, 제대로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불만이 농민공들, 특히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세대 농민공들의 저항을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에서 각종 갈등이 불거지자, 중국 지배관료 사이에서도 농민공들에게 거주권을 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농민공 차별과 저임금 체제가 밀접히 연관돼 있어서 개혁은 더디다. 호구제 개혁으로 농민공들에게 교육과 의료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원을 여기에 써야 하는 점도 지배자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이처럼 이등 시민 취급을 받으며 자란 신세대 농민공들은 현재 강력한 노동계급 집단으로 가장 전투적으로 싸우고 있다. 이들은 주로 수출 산업에 집중돼 있어 파업의 파급 효과가 상당히 크다. 이 젊은 농민공들은 최근 여러 파업들을 주도했고, 이제 파업은 이들에게 “일상적 문화가 됐다.” 또한 1989년 톈안먼 항쟁 패배의 경험에서 비교적 자유롭기도 하다.

이들의 투쟁이 앞으로 핵심 전략 산업의 국영 노동자들을 자극해 투쟁에 나서게 할 가능성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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