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가 왜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하는지, 진짜 좌파의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 박노자 교수는 최근 출간된 《좌파하라》(꾸리에)에서 혁명과 ‘진짜 좌파’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좌파하라》에서 자본주의는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하셨는데, 핵심 취지는 무엇입니까.

박노자 교수 ⓒ임수현

 ‘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때, 무엇보다 세계적인 환경과 자원 위기 상황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사적인 이윤 추구 위주의 체제이며, 이윤 추구가 경쟁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부득이하게 자원의 낭비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대안 에너지에 대한 연구 같은 것이 석유 자본의 이해관계에 밀려서 잘 이뤄지지 못하지요.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환경 친화적 미래 개척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본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방금 말한 환경 파괴 이외에도, 지속적인 군비 경쟁과 전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경향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수익성이 안정적인 무기 산업에 투자가 이뤄집니다. 그것을 바로 영구적인 군비 경제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일단 무기를 만들면 전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열강 사이의 자원 지배에 대한 각축 등등 전쟁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어쨌든 자본주의와 전쟁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입니다.

자본주의가 바람직하지 않은 여러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가장 다수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일 것입니다. 

유럽 사민주의나 장하준 교수가 주장하는 스웨덴 모델로 자본주의를 뜯어고치는 것에는 어떤 한계가 있습니까?

스웨덴 모델에서는 세금을 통해 재분배가 된다 해도 여전히 생산의 주체로 대기업들이 남아 있는 것이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정치적 상황이 약간이라도 바뀌고, 예컨대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 이 대기업들이 노동자들이 여태까지 쟁취한 많은 부분을 다시 빼앗을 수가 있다는 것이죠.

지금 스웨덴에서는 보수 내각이 집권하고 있는데 이 보수 내각이 한 여러 조처들(예를 들어, 실업수당 관련 법률 개악이나 연금 관련 법률 개악)을 보면, 대체로는 여태까지 노동자들이 쟁취한 여러 권리들을 조금씩 조금씩 삭감해 가는 추세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뒤에 있는 것이 재벌들의 여전한 정치력이고요.

그러니까 스웨덴 모델은 한 특정 시기에 노동자들에게 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속성’의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자본주의 국민국가 틀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자본은 스웨덴 국가 내에서 스웨덴 노동자들한테 재분배를 한다 해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로 진출해서는 재분배가 아니라 착취 위주의 행각을 벌이는 것이죠.

5년 전부터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인한 위기가 발생해서 그 나라 노동자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위기의 발생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곳에 진출한 스웨덴계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집값 융자를 해 준 것이었습니다. 스웨덴 자본이 스웨덴 밖에서는 얼마든지 약탈적인 행각을 벌일 수가 있는 것이죠. 

21세기에 혁명의 현실성에 대해 주장하시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혁명이라고 하면 꼭 전쟁이나 무장 투쟁 같은 이미지들이 연상되는데, 우리가 지난 아랍의 봄 때 본 것은 무기를 갖지 않은 시민들이 말 그대로 자기 몸을 희생해 가면서 [사회·경제적인 혁명을 이루지는 못했다 해도] 적어도 정치적인 혁명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 ‘독재 타도’라는 하나의 목적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뤄졌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무장되지 않은 시민들의 연대와 집단 행동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혁명’이라는 것은 이렇게 공동의 분노, 연대 정신이 있기만 하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최근의 현상은, 특히 남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총파업들입니다. 최근 몇 년을 보면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에서 아주 큰 규모의 총파업들이 몇 차례 있었고, 특히 올해 포르투갈 총파업 같은 경우에는 대다수 피고용자들이 파업에 참가하는 등 정말 전국이 마비되는 광경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혁명의 가장 큰 정치적인 요소는 바로 연대적인 집단 행동과 총파업이죠. 그렇게 해서 체제를 마비시키고 굳이 피를 흘리지 않더라도 민중이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이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현실에서 이와 같은 행동들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어서, 정말 혁명의 현실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진짜 좌파’의 구실을 강조하고 계신데요?

‘진짜 좌파’는 자기 계급적인 소속을 밝힙니다. 이 사회의 본질은 계급 갈등이고 [따라서] 정치 행위자는 중립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의 정당이다’, ‘우리가 전 국민을 대표한다’ 하는 말은 적어도 좌파와는 무관하죠. 대체로는 지배자들을 대표할 때 이런 표현들을 쓰는 것이죠.

그리고 ‘진짜 좌파’는 자본주의를 분명히 문제시합니다. 자본주의를 문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분배 체계를 수정하겠다거나 복지만 늘리겠다는 것은 좌파와 무관합니다. 사실 복지 늘리겠다는 이야기는 요즘 새누리당도 하지 않습니까. 이미 보수도 눈치 채고 그 정도 수준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하고 있는데, 좌파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변혁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죠.

동구권이 몰락하고 나서 지난 20년 동안 온갖 포스트 담론들이 꽃피우는 시기가 있었고, ‘마르크스주의가 몰락했다’, ‘마르크스주의가 낡았다’ 하는 목소리를 심지어 일부 좌파 진영한테서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몰락한 것이 마르크스주의가 아니고 자본주의를 옹호했던 온갖 이론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지금 유럽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케인스주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케인스주의적 방법으로도 위기가 극복되지 않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마르크스주의를 더 잘 배워서 마르크스주의가 내포하는 혁명적인 본질을 더 잘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는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마르크스의 모든 말이 옳다[고 하]는 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의 본질에 맞춰서 그 내용을 계속해서 업데이트 할 수 있는 것이 마르크스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뷰·정리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