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이 7월 27일에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을 팍팍한 일상의 탈출구로 생각하며 즐길 것이다. 힘겹게 노력해서 꿈을 이루는 선수들을 보며 희망을 찾고, 점점 더 원자화 하는 세상에서 일체감을 느낄 대상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올림픽이 주는 환상의 이면에는 기업들의 이권과 권력자들의 정치적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

올림픽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기업들이다. 영국 정부는 긴축을 추진해 교육재정은 4분의 1을 삭감하고, 대학 등록금은 3배 인상하면서도 올림픽을 위해 무려 43조 원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다. 이 덕분에 건설기업, 보안기업 등은 특수를 누렸다. 

각국의 지배자들은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올림픽의 함성 속에 첨예한 계급 갈등을 가리려 할 것이다. ⓒ사진 제공 최윤석

특히 이집트와 중동 등에서 부자들을 위한 사설 경호를 하며 피비린내 나는 돈을 버는 기업인 G4S가 이번 올림픽의 보안을 담당했다.

또 영국 정부는 올림픽에 참여하는 기업들에게 1조 원이 넘는 면세 혜택을 주기도 했다.

이렇게 부자들에게 퍼 준 돈은 이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긴축 강요로 돌아올 것이다.

올림픽은 원래 민족주의적인 목적에서 출발했다. 피에르 쿠베르탱이 현대 올림픽을 고안했는데, 프랑스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그 계기가 됐다.

민족주의를 철저히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1936년의 베를린올림픽이다. 히틀러는 올림픽을 “아리안 인종”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나치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대규모 선전장으로 이용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도 전두환·노태우 등 군부 지도자들이 광주 학살을 감추고 지배를 정당화 하려고 유치했다. 노태우 정부는 고양되던 노동자·민중 운동을 꺾으려고 올림픽에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데 혈안이 됐고 승부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2년 미국 동계올림픽에서도 미국은 애국심 고취에 열을 올렸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이었는데 올림픽 개막식 때 ‘찢어진 성조기’를 들고 나와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했다. 

올해 올림픽의 슬로건은 “하나의 삶”인데 각국 지배자들은 이런 선동을 통해 경제 위기가 낳은 첨예한 양극화를 흐리려 할 것이다.

자본주의와 스포츠

사실 올림픽 경기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가 정치와 연결돼 있다.

인류가 탄생한 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현대 스포츠와 같은 활동은 존재하지 않았다. 육체 활동은 노동 과정에서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경쟁적인 운동 경기는 소수 군사적·종교적 특권층이 다수를 지배한 계급사회의 발전과 함께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주변 도시 국가들과 전쟁을 하던 상황에서 제물 바치기를 포함한 종교의식과 함께 올림픽이 열렸는데 이조차 현대 올림픽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직 1등이 되겠다는 목표를 위해 미친 듯이 수영장을 왕복하고, 0.001초의 기록을 앞당기려고 몸을 망가뜨리는 약물까지 복용하며 달리고, 단체 경기에서도 마치 노동 현장을 반영하듯 꽉 짜여진 분업과 규칙이 부과되는 스포츠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현상이다. 

경쟁이 자본주의의 핵심이듯 스포츠의 핵심 동력도 경쟁이 돼 버렸다. 

이런 경쟁 속에서 스포츠는 운동선수들에게는 고역이다. 즐겁게 놀려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선수들은 오로지 경쟁하고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 온갖 무리한 훈련을 견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도 자본주의의 소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수의 이윤을 위해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동은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것이 돼 버렸다.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는 여가시간이 돼서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스포츠를 지루한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여긴다.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나 팀, 국가와 일체감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한국 대표팀의 승패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리고 언론 매체는 스포츠를 이용해 공격적인 개인주의, 냉혹한 경쟁심, 맹목적 국수주의, 인종차별 관념 등을 끊임없이 퍼뜨린다. 

온갖 편견과 경쟁 압력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즐길 거리로서의 스포츠는 사람들이 노동에서 소외되지 않고, 경쟁이 아니라 상호 협조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에서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