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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정체성과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위기 속에 십수 년간을 공들여 쌓아 온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크게 후퇴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개혁 입법안 제출은커녕 중요한 여러 정치 쟁점에서 입장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태의 주된 책임은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에게 있다. 구당권파는 선거 부정 사태를 둘러싸고 최소한의 쇄신마저 거부하며 진보정치의 혁신을 바라던 노동자·청년 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민주당과의 연립정부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던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종파적 패권주의가 진보적 정의와 단결의 블랙홀이 됐다. ⓒ사진 고은이

그런데도 구당권파는 이 사태를 성찰하기는커녕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

구당권파를 옹호하는 글들을 모아 최근 출간된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이하 《진보의 블랙박스》)에서도 이런 태도가 나타나 있다.

물론 정부와 우파의 “종북” 마녀사냥은 역겨운 일이었고, 이런 탄압에 맞서 우리는 언제든 이들을 방어하며 싸워야 할 것이다. 《진보의 블랙박스》에서도 많은 필자들이 “종북” 마녀사냥을 비판하며, 이에 동조하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진중권 등의 지식인과 〈한겨레〉, 〈경향신문〉과 같은 개혁주의 언론을 비판했는데, 이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그럼에도 구당권파가 자신들이 마녀사냥당하고 있다는 프레임으로만 이 사태를 해석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여러 세력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해석했다. 우파들은 “종북”이 문제라며 마녀사냥에 이용했고, 일부 세력은 올곧게 정의를 바로세우려 하기보다는 이 일을 자신들의 주도권 확대를 위해 활용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상황을 끼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한다.

이번 사태는 무엇보다 정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진보정당에 어울리지 않는 선거 부정과 중앙위 폭력 사태 등을 보면서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란 많은 노동자·청년 들이 큰 환멸을 느낀 것이다.

이런 문제는 진보의 가치는 뒷전으로 둔 채 계급적 기반이 다른 참여당과 실용적인 목적으로 무원칙한 통합을 한 것을 배경으로 벌어졌다.

과열된 국회의원 자리 다툼 속에서 곳곳에서 선거 부정이 벌어졌고, 격화된 당권 투쟁이 문제를 증폭시켰다.

이런 사태의 핵심 책임은 구당권파에게 있다. 구당권파는 진보의 분열을 일으키며 참여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인 당사자다.

구당권파는 참여당을 진보에 포함시키며 빨간칠을 해 주고, 민주노동당 강령을 후퇴시키며 진보의 원칙을 훼손해 왔다.

그런 기반 위에 최근 유시민은 민주당과의 통합까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합류한다면 자신의 왼쪽을 향해 우경화 압력을 가할 것이 분명하다”고 했던 노동자연대다함께의 경고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이다.

최근 구당권파가 당을 ‘우경화’시키고 있다며 신당권파를 비판하는 것이 적반하장으로 들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정희 전 대표는 참여당과의 통합을 반성하기는커녕 “통합정신 회복”을 말한다. “통합정신”이란 ‘국민 눈높이’와 ‘대중적 진보’를 말하며 강령을 후퇴시키고, 진보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자기 최면

또 구당권파는 선거 부정을 전혀 인정하거나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자신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진보의 블랙박스》에는 ‘참여당 계열 인사의 범죄와 음모 때문에 모든 사건이 벌어졌고, 구당권파는 아무 죄 없이 희생됐다’는 설명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참여당 계열 후보였던 오옥만 측에서도 조직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렀고, 이에 연루된 사람이 진상조사위 일원이었던 점 등에 대해 신당권파 측이 철저하게 규명하고 정화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은 문제다.

신당권파가 문제를 당내 주도권 장악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도 사실이다. 심지어 신당권파의 일부는 당권 투쟁에 눈이 멀어 조중동에게까지 당원 명부를 넘겼다. 그러나 상대의 약점을 이유로 자신의 잘못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대리투표와 무단으로 투표 여부를 확인하는 등 구당권파 측이 관여한 선거부정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구당권파 측은 자신들의 부정은 10~20퍼센트에 불과하다고 강변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10~20퍼센트를 부정이 아니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가 커진 진정한 원인은 다른 세력들은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데 반해서 구당권파가 선거 부정 문제를 전혀 책임지지 않겠다고 버티다 못해 중앙위까지 폭력적으로 무산시킨 데 있다.

그런데도 《진보의 블랙박스》는 중앙위 폭력 사태를 〈부러진 화살〉에서 석궁을 쏜 교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정당방위로 묘사한다.

그러나 중앙위 폭력 사태는 구당권파가 패권을 고수하려고 운동 내 민주주의를 무시한 비판받아 마땅한 행동이었다. 잘못된 수단의 채택도 배제하지 않는 스탈린주의적인 실용주의 도덕관을 바탕으로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이다.

정부와 우파에게 종북 마녀사냥을 당해 왔다는 사실 때문에 구당권파의 잘못까지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진보의 블랙박스》에서는 이정희의 침묵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비유하고, 구당권파를 이승만에게 친북 마녀사냥에 희생당한 조봉암에 비유하며 숭고한 희생자로 묘사한다.

정부의 탄압이라는 진실의 한 측면만을 부각하며 자기방어적인 논리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만이 진보라는 종파성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구당권파는 “통합진보당 분당은 반노동자” 행위라고 규정한다. 이 동지들은 자신들이 불러일으킨 환멸 때문에 민주노총마저 지지를 철회한 상황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또 이정희 전 대표는 ‘통합진보당으로 단결하지 않는 것은 분열이고 진보가 아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쇄신도 거부하며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안기며 분열을 불러 온 장본인이 바로 구당권파다. 게다가 이 말은 자신들을 지지하고 함께하는 것만이 진보라는 심각한 종파성을 보여 준다.

구당권파는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참여당과 통합과 ‘묻지마 야권연대’를 추진하며 진보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정의·민주주의를 무시한 자신들의 태도가 얼마나 큰 문제를 낳고 있는지 봐야 한다.

구당권파가 진실을 외면하고, 자기 정당화에 빠져 있을수록 그들이 말하는 진보의 단결은 더 힘들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