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제이엠·만도에서 벌어진 용역 침탈과 직장폐쇄는 지배자들의 추잡한 공모이자, 씻을 수 없는 범죄다. 한낱 용역업체가 미쳐 날뛴 것은 정부와 기업주들의 노조탄압 공세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은 올림픽과 휴가를 앞두고 전체 노동자들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해 있을 때를 노렸다. 이들은 금융노조, 홍익대 청소·경비분회, 서희산업 노조 등에는 양보하거나 공격을 연기하면서, 금속노조를 집중적으로 두들겼다.

지배자들이 이토록 파렴치한 만행을 저지른 데에는 경제 위기 심화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2008년 위기 이후 최근 2년여간 유성기업·발레오만도·KEC 등에서 반복된 민주노조 파괴 공세가 이어졌다. 그때마다 사측은 노동자들의 저항을 짓밟고, 외주화와 구조조정 등 노동유연화를 밀어붙였다.

부품사 노조 때리기는 현대·기아차 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완성차 자본가들은 부품사 노조들의 투쟁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되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최근 완성차업체의 부품 수급이 ‘즉시 조달체계’로 돌아가면서”(조철 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 부품사 노조들에 대한 관리·통제의 필요성도 커졌다.

이 때문에 지난 수년간 에스제이엠·만도에서 유지돼 온 “원만한 노사관계”는 산산조각났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금속노조의 1·2차 파업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부대가 다시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허점도 나타내면서 저들은 유혈낭자한 도발의 틈을 발견한 듯하다.

금속노조 파업

현대·기아차 노조 지도부는 생산량 보전 압력에 흔들리기 시작했고, 기아차 소하리지회 지도부는 배신적으로 비정규직 확대에 합의했다. 현대위아를 비롯해 일부 부품사 노조들은 금속노조 지도부의 묵인하에 일정 수준의 임금을 보장받고 파업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단기적·부문적 시야에 갇혀 계급적 단결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이 일부 나타나면서, 저들은 전국적 투쟁 전선을 흔들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게다가 통합진보당 사태가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을 떨어뜨린 것도 저들을 고무했을 것이다. 용역 침탈 직전에 이석기·김재연 제명이 부결되면서, 혁신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노동자들은 더 큰 실망에 빠졌다. 지배자들은 이런 상황을 노동자 탄압에 이용하며 야비한 분열과 고립을 꾀한 듯하다. 에스제이엠과 만도가 모두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친화적인 노조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물론, 지배자들의 폭력 만행은 후폭풍을 낳고 있다.

용역 침탈 직후 컨택터스의 실체가 폭로됐고, 정부와 경찰이 이를 비호했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레임덕에 시달리던 이명박과 ‘공천 헌금’ 비리로 곤경에 빠진 박근혜에게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운동의 대응은 아직 충분치 못한 상황이다.

금속노조는 휴가가 끝나고 나서 본격 대응을 시작했지만 2~4시간 파업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고, 8월 11일 열린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는 반격의 기운을 끌어올리는 신호탄이 되지 못했다.

전국적 투쟁 전선이 강화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GM대우 노조 지도부는 주간2교대 문제를 현대·기아차 노조에 맡겨 버리고 먼저 교섭을 잠정 합의했고, 기아차 노조 지도부도 현대차만 쳐다보며 투쟁 조직에 힘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사슬의 맨 꼭대기에 있는 현대차 노조 지도부가 심야노동 철폐,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요구를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속에서 8월 말 민주노총 파업의 동력도 기대만큼 뚜렷하게 손에 잡히진 못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가 올 초부터 정치파업을 선언하고 일부 투쟁 확대를 시도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이다. 그러나 계획을 선언하는 것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을 전진시키며 투지와 자신감을 키워가는 것이다.

파업은 언제든 꺼내 휘두를 수 있는 주머니칼이 아니고, ‘정치파업’의 성공 여부는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올 초부터 언론노조·쌍용차·화물연대·금속노조 등 잇따른 투쟁을 서로 연결하며, 정치적 연대와 단결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투쟁의 가능성을 제시해 나가야 했다.

사실 민주노총의 파업 계획은 지난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실패하고, 특히 통합진보당이 위기를 겪으면서 힘이 커지지 못해 왔다.

민주당

에스제이엠·만도 침탈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자주적 행동을 확대하기보다 민주당의 국회 대응에 의존하게 되고 있다. 그러다 보면 민주당 수준에 우리의 요구나 투쟁 수준을 맞추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MBC 노조가 민주당의 ‘김재철 퇴진’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 파업을 접은 후에도 탄압세례를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민주당의 약속은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최근 민주노총이 8월 말 투쟁 조직을 위한 지역별 농성에 돌입한 것처럼, 스스로의 투쟁의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 물론 여기에 진보의 정치적 대안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결합돼야 한다.

특히 현장조합원들 사이에서 작업장을 뛰어넘는 계급적 단결을 추구할 좌파의 구실이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노동자들이 자기 작업장을 넘어서,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의 호민관’으로 나서 전국적·정치적 문제들에 개입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이 강조는 유효하다.

올해 노동자 투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 투쟁이 계속되고 있고, GM대우의 부족한 합의안은 노동자들의 압도적 반대로 부결됐다.

8월 말 민주노총의 투쟁에 최대한 많은 이들이 결집해 힘을 보여 주는 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계급세력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하반기 예고된 학교비정규직·공무원·쌍용차 투쟁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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