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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도 사태가 보여 주는 쓰디쓴 교훈

부품사 민주노조의 맏형 격인 만도 노조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노동조합 운동에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유사한 일이 반복됐지만, 오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만도 노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작심하고 직장폐쇄 카드만 꺼내 들면 다 무너질 것’이라는 식의 견해는 과장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나 KT·서울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했을 때도 긴장이 돌았지만, 그것은 민주노조운동의 토대를 흔들지는 못했다.

‘25년 만도 노조의 역사가 한 방에 무너졌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지만, 이것도 진실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태는 만도 노조가 얼마나 약화돼 왔는지를 보여 준다.

지난해 금속노조의 기관지 〈금속노동자〉는 이렇게 지적했다.

“노조의 역사와 그 노조의 실력은 결코 같은 말이 아니다. 직장폐쇄에 노조가 무너지거나 위태로워진 발레오만도, KEC, 상신브레이크 등도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만도 노동자들은 1998년 분할 매각 과정에서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를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다. 이후 회사는 6개 작업장으로 쪼개졌고 고용불안도 계속됐다. 노조는 2008년에도 매각 반대 투쟁에 나서야만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노조는 투쟁으로 이에 맞서기보다는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 특히 2008년 이후 한국 자동차산업이 단기 호황을 누리면서 ‘안정적 노사관계’가 유지됐다. 노조는 사측의 외주화를 허용하는 대신, 주식 배당 등 눈앞의 실리를 추구했다.

이 속에서 투쟁의 근육은 무뎌졌다. 일부 노조 간부들이 앞장서 이런 협소한 실용주의를 부추겼다. 이번에 친사측 노조위원장이 된 공병옥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정치투쟁과 허구적 산별주의로 명분도 없이 투쟁을 남발한 금속노조와 결별한다.”

이런 그가 2007년 매각 반대 투쟁을 이끈 지도부였다는 사실은 정말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만도 사측은 정부와 대자본을 등에 업고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불법적 직장폐쇄까지 감행한 마당에, 왜 노동자들은 작업장을 뛰어넘는 연대로 정치투쟁을 벌이면 안 되는가? 왜 밤에는 잠 좀 자자는, 불법파견을 정규직화하라는 금속노조의 파업에 명분이 없는가?

사실, 만도 노동자들 사이에선 ‘금속노조의 정치파업 일정에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깁스 노동자들은 안됐지만, 꼭 만도가 적자 기업을 인수해야 하는가’, ‘어차피 지난 집행부가 합의한 것인데, 외주화를 철회하려고 이렇게 싸워야 하는가’하는 등의 정치적 물음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정치

그러나 “사측의 거듭된 악의적 선동을 간과했다”는 김창한 지부장의 말에서 보듯, 노조 지도부는 싸움의 정당성을 분명히 하며 우리 편을 정치적으로 무장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지 않은 듯하다. 좌파 활동가들도 정치적으로 취약하긴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김창한 지도부는 용역 1천여 명이 몰려 올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협상과 투쟁 사이에서 동요하다가, 결국 조합원들에게 휴가 지침을 내렸다. 용역깡패가 밀고 들어왔을 때는 이를 막을 동력도 없었다.

김창한 지도부는 결국 우파적 압력에 밀려 사퇴했고, 그 공백을 틈타 친사측 노조가 들어섰다.

따라서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노동자들의 정치적 자신감과 결속을 높이며 경제·정치 투쟁 모두에서 회피하지 않는 정치적 노동조합 운동이 필요하다. 정치적 주장과 대안으로 무장해 있을 때, 자신감이 유지될 수 있고, 자신감이 뒷받침 돼야 전투적 전술을 채택할 수 있다. 또 조합원들이 스스로 행동하는 전투 속에서만 조직력과 투쟁력은 강화될 수 있다. 이 속에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꾀할 좌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도 조직돼야 한다.

지금 만도 사측이 금속노조의 교섭권 지위를 부정하는 것은 규탄해야 마땅할 일이지만, 교섭권만 확보한다고 무너진 노조를 세워낼 수는 없다. 활동가들이 우리 쪽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투쟁을 조직해 나갈 때, 다시금 민주노조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