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사병인 용역깡패들이 에스제이엠에서 유혈낭자한 폭력을 사용해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내쫓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투쟁 중인 작업장에 용역깡패들이 투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이후 발레오만도, KEC, 유성기업 등지에서 자행된 일련의 폭력사태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공권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꺼이 사적 폭력에도 의존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이미 2010년에 ‘미래 신성장 동력 및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민간군사기업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정부의 방침은 자본가들이 용역깡패들을 마음 놓고 사용하도록 날개를 달아 줬다.

정부의 묵인과 보호가 없다면 깡패들이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마음껏 짓밟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성호 컨택터스 회장이 새누리당 주요 간부였고, 주폭과 학교폭력 등 ‘5대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찰이 도움을 요청하는 조합원들의 구조 호소를 외면하고 용역 깡패들을 비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컨택터스가 ‘공권력’이 아니었다는 점만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교육과 의료에 이어 급기야 폭력까지 상품화시키는 신자유주의를 폭로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계급 지배의 폭력적 본질을 주목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극소수의 지배자들은 다수의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을 착취하고 억압하기 위해서 동의와 설득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찰, 군대 등의 폭력기구에 의존한다. 따라서 ‘공권력’은 공공의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지배자들을 위한 제도적이고 합법적인 폭력수단이다. ‘공권력’을 통한 강제와 폭력이 없다면 자본주의 질서는 며칠도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지배자들은 경찰과 같은 합법적인 국가 폭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가였던 부하린은 《꼬뮤니즘 ABC》에서 “자본주의 국가가 의존하는 폭력은 군대와 경찰과 감옥뿐 아니라 스파이와 조직된 파업 파괴자, 살인청부업자 등과 같은 보조 기관에도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진 지배자들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탄압을 자행하려 할 때 “보조 기관”에 의존하곤 한다.

2011년 2월 이집트에서 보안경찰들이 혁명적 시위를 짓누르기 위해 깡패들을 대거 모집해 타흐리르 광장에 투입한 것은 이런 점을 잘 보여 준다.

보조 수단

사실, 2009년에 용산 참사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대한 살인 진압은 컨택터스 같은 용역깡패가 아니라 합법의 탈을 쓴 경찰이 자행한 짓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지배자들은 이런 소름 끼치는 경찰 폭력으로 심각한 반발과 비난에 직면하자, 그 후에는 정부 책임을 은폐하고 비난의 화살을 개별 경비업체에게 돌리기 위해 경찰 대신 용역깡패도 번갈아 사용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도 2001년 4월에 대우자동차 조합원들에 대한 천인공노할 경찰 폭력(영화 ‘부러진 화살’에 잠깐 나오는) 이후에 비난 여론 속에 노동쟁의 현장에 경찰보다 용역깡패 투입이 잦아진 바 있다.

그래서 2001년 여름에는 울산에서 효성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식칼과 가스총과 고무충격총, 심지어는 전기충격기로 무장한 깡패 수백 명이 백주대낮에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일도 벌어졌다.

때로는 ‘공권력’보다 자본가들이 사주한 깡패들이 노동자들의 저항을 짓밟는데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경찰과 달리 용역 경비들은 공장 안에 상주하며 노동자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탄압할 수 있다. 법적인 절차에 얽매일 필요도 없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 같은 강력한 민주노조가 있는 대기업 작업장에도 사장들이 고용한 건장한 용역 경비들이 상주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는 1938년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화된다는 것은 자본의 반격 방식이 격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자본가 계급은 정규 경찰과 군대만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평화적 시기’에조차 자본가 계급은 공장에서 깡패들과 파업 파괴자들을 무장시켜 놓았다.”

이런 자본가들의 폭력적인 공격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힘은 국회나 법원보다는 거리와 공장에서의 강력하고 단호한 노동계급의 저항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민주통합당이 국회에서 컨택터스를 폭로하긴 하지만, 사실 민주당 집권시절에도 파업 현장에 용역깡패 투입은 비일비재했다. 민주당 의원 임내현이 컨택터스의 변호사였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허가가 취소되고 약간의 벌금을 물더라도, 이름만 바꿔서 재등록하고 순식간에 수억 원을 벌 수 있는 현실에서 법적 제재도 한계가 있다.

한편, 지배자들은 국내의 저항을 짓누르기 위해서만 용역 깡패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수행에 따른 정치적·재정적 부담을 줄이고자 민간군사 업체들을 전장에도 투입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주둔 병력의 절반 이상이 용병이다. 인기 없는 전쟁에서 미국 병사들 대신 용병들이 죽는 것이 전쟁 수행에 따른 미국 지배자들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 준다. 민간인 사망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개별 용역업체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

미국의 악명 높은 민간군사업체 ‘블랙워터’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 민간군사업체 ‘블렛케이’가 하는 구실은 이런 것이다.

이처럼 폭력 산업이 육성되고 거대화하는 것은 야만적인 체제의 단면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 자체가 폭력에 의존하는 체제다. 전쟁과 국내 저항 운동에 대한 야만적인 탄압은 서로 경쟁하면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특징이다.

우리는 용역깡패들이 설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모두 없애고, 깡패기업, 살인 기업을 불법화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나아가 용역깡패들을 끊임없이 육성하고 활용하고 보호하는 정부와 자본가들, 이 체제에 맞선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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