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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쉴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을 타며

“당신을 이해합니다, designed for humans”

휴대폰이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광고가 귀에 박힐 듯 들려온다. 그런데 그 휴대폰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가 되어 보니 이해받기는커녕, 사람이 아니라 기계 부품이 된 것 같다.

등록금은 비싸고, 물가는 계속 오른다. 불황에 아빠 사업은 잘 안 풀리고, 용돈은 줄고, 자취 생활은 빠듯하다.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이지만 알바를 해 보려고 했다. 단기 알바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 소개로 아웃소싱 사무실을 찾았고, 근처 공단에서 휴대폰 껍데기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한국, 중국, 베트남, 필리핀... 다양한 국적의 언니들과, 한 라인에서, 똑같이 최저시급 4580원을 받고 일한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는 건 기본, 저녁 먹고 8시 30분 혹은 그 이상까지 잔업은 반 강제다. 휴일이나 주말에 특근도 웬만해선 필수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스〉에서 봤던 ‘라인’을 실제로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그 앞에 몇 시간이고 꼼짝없이 서서 일하자니 온몸이 다 쑤신다. 1초에 1개씩, 5분이면 휴대폰 껍데기 3백 개가 내 손을 스쳐간다. 어마어마한 양의 휴대폰 껍데기들은 다른 공장에서 휴대폰으로 조립돼 상품이 될 것이다.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돌아가는 라인이 원망스럽다. 그렇게 빠르게 도는 라인을 타고 만들어지는, 그 많은 휴대폰들이 과연 다 팔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휴대폰을 만들면, 팔아 치워야 하니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광고를 만들고, 내보낼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휴대폰을 일부러 잘 고장 나게 만든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게 버려지는 휴대폰들은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까지 파괴할 거다. 정말 비합리적이고 미친 것 같은 자본주의다.

내가 일한 만큼 받지 못 하고 있다는 게, 끊임없이 스쳐가는 휴대폰 껍데기들을 통해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스트레스와 피로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라인처럼, 끊임없이 쌓인다. 그러다가 서로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장난치며 웃음으로 견디거나, 꾸역꾸역 참고 버티기도 한다. 며칠 못 버티고 그냥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 웹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연간 매출액은 4백억 원이란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고 힘겹게 만들어 낸 이윤을 소수 임원들이 날름 삼켜 버린다. 아이들 등록금에, 학원비에, 가족들 식비에, 집세까지 손목에 파스 붙여 가며 하루하루 생활을 꾸려가는 수많은 언니들이 있다. 또 한켠에는 그런 언니들이 만들어 낸 어마어마한 이윤으로 삐까번쩍한 외제차 굴리면서 빈둥대는 사장들이 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현실이다.

힘겨움과 불만들이 낱낱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 답답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더 이상은 못 참아’가 돼 함께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손놓고 일 안 해 버리면 제품은 만들어질 수 없고, 이윤도 날 수 없다. 그렇게 ‘우리’로 존재할 때 답답한 현실을 뒤바꿀 수 있다.

8월이 끝나면 난 이 작업장을 떠날 것이고, 당장에 언니들과 손 붙잡고 사장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는 막막하다. 그래도, 언니들의 따뜻한 미소를 잊지 않고, 자본주의를 끝장내는 날까지 노력하고 싶다. 자본주의가 공격하는 우리네 삶을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