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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평가와 전망:
밤샘노동과 불법파견에 맞서 온 현대차 투쟁

7월 13일 금속노조 1차 파업부터 시작한 현대차 투쟁이 이제 종착역으로 치닫고 있다. 8월 30일 사측과 정규직지부 문용문 지도부의 잠정 합의안이 나온 것이다.

우선 내년 3월부터 “밤샘노동”이 폐지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합의안에 따르면 주간연속2교대제는 내년 3월부터 도입된다.

그동안 ‘2급 발암물질’인 심야 노동으로 근골격계 질환과 수면장애 등 온갖 고통을 겪은 노동자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어느 정도 임금을 보전할 수 있게 된 것도 의미있다. 노동자들이 ‘3년 연속 무쟁의’를 뚫고 부분파업 등에 나선 것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8월 16일 현대차 원하청 노동자가 참가한 집회 정규직에게도 불만족스럽고, 불법파견 문제도 떼어 낸 합의안을 넘어서서 정규직·비정규직 단결을 모색해야 한다. ⓒ사진 출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그러나 이번 합의에 대한 아쉬운 점과 비판이 더 크게 제기되고 있다. 합의안에서 정규직지부 지도부는 생산량을 맞춰야 한다는 사측의 압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8+8”(1조 8시간, 2조 8시간)이 아니라 일단 “8+9”를 실행하기로 했다.

인력충원도 없는 7.5퍼센트 정도의 노동강도 강화를 수용했고, 사측이 요구한 추가 작업시간 1백48시간도 받아들였다. 임금 수준 보전을 생산물량 보전과 연동시킨 것도 우려를 사고 있다. 게다가 2조 근무자는 막바지 작업 시간에 쉴 틈도 없이 2시간 40분을 줄창 일해야 한다.

현대차가 지난 몇 년째 천문학적 순이익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인상 수준도 부족하다. 대의원대회에서 지난해 순이익의 30퍼센트를 성과금으로 요구했지만 잠정 합의 결과는 16퍼센트에 그쳤다. 기본급도 15만 원 인상을 결정했는데 9만 8천 원 인상에 합의했다. 이런 내용은 올 초 대의원대회에서 노동자들이 결의한 것에 못 미친다.

이 합의 내용이 부품사 등 수많은 다른 작업장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아쉽다. 이 때문에 8월 30일에 현대차 활동가 수십 명이 교섭장을 가로막고 잠정합의에 반대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불법파견 정규직화’ 문제가 아예 빠졌다는 데 있다. ‘특별교섭’에서 계속 다룬다지만, 정규직 임단투가 마무리된 뒤에 정규직이 파업 등으로 뒷받침할 수 없는 협상에 사측이 진지할 리가 없다. 따라서 제대로 된 주간연속2교대뿐 아니라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위해서도 정규직·비정규직 단결 투쟁과 파업을 지속했어야 한다.

문용문 지도부는 ‘특별교섭으로 분리’가 비정규직지회의 요구였다지만, 이는 회피성 핑계일 뿐이다. 비정규직지회 반발의 핵심은 정규직 노조가 본교섭에서 사측의 “선별적 신규채용과 공정분리”라는 ‘쓰레기안’을 받지 말라는 데 있었다.

그런데 문용문 지도부는 비정규직지회에게 ‘쓰레기안’을 받으라는 부적절한 압박을 넣다가, 반발이 심하자 이제는 아예 비정규직의 요구를 떼어 내서 정규직의 연대 의무를 외면하려 한 것이다.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라는 요구로 함께 투쟁해 달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정한 열망에 등을 돌린 것이다.

그래서 현대차의 투사들은 8월 24일 대의원대회에서 ‘불법파견 문제를 특별교섭으로 분리시키자’는 문용문 지도부의 안건을 지지하지 않았다. 결국 문용문 지도부의 시도가 좌절됐는데도 문용문 지도부는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그 후 며칠 만에 불충분한 내용의 잠정합의로 정규직 임단투를 끝내 버리고, 불법파견은 특별교섭에서 다루기로 합의해 버린 것이다.

현대차 투쟁은 밤샘노동과 비정규직 차별에 신음해 온 수백만 명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민주노총의 8월 파업 계획에서도 현대차 노조의 구실이 중요했다. 투쟁의 역사 속에서 다져진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민주노조 운동의 선도 부대로서 해야 할 구실이 있었던 것이다.

외면

이런 모든 점들을 고려했을 때, 정규직 요구 성취에서도 부족하고, 불법파견 문제도 떼어 낸 이번 잠정 합의안은 부결되는 것이 맞다.

사실, 문용문 지도부는 이번 투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다 사용하지 않았다. 철저히 부분 파업 중심으로 힘을 제한했다. 그럼에도 현대차 사측은 파업 손실액이 1조 5천9백44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자동차 재고도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것은 한국의 핵심 산업인 자동차 산업에서 조직 노동자들의 잠재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힘을 모두 발휘했다면 제대로 된 주간연속2교대제와 불법파견 정규직화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비정규직 요구를 외면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현대차 활동가들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이 최우선이다 ⓒ김기선

그러나 정규직 지도부는 전면파업을 주저했고 사측은 숨돌릴 틈을 얻을 수 있었다. 사측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간질하며 투쟁을 약화시키려 했다. 쟁의기간 직전에는 대규모 직영 단기 계약직을 도입해 불법파견 회피 꼼수를 부렸고, 본교섭에서는 불법파견을 무시하는 ‘쓰레기 안’을 내놨다. 그러나 문용문 지도부는 이에 단결 투쟁으로 맞서기보다, ‘현실적인 타협안을 수용하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사기를 꺾기나 했다.

한편,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문용문 지도부가 본교섭에서 부적절한 타협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 정규직 임단투와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의 분리를 수용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기층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을 건설한다는 핵심 과제를 분명히 하지 못한 것이다.

울산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근래 “투쟁하는 조합원 우선 정규직 전환”을 강조하며 혼란을 자아낸 것도 안타깝다. 물론,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이 약화하는 상황에서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과 투쟁에 끌어들이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의도치 않게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 요구와 대의명분을 흐리는 효과만 냈다.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응집력이 약화된 원인과 책임은 비정규직과의 단결 투쟁을 소홀히하고 외면한 정규직지부 지도부의 태도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기층에서 비정규직과 연대하려는 정규직 활동가들의 움직임이 존재했다. 울산 1공장의 전투적 정규직 대의원들은 비정규직 파업을 적극 지원했다. 문용문 지도부가 불법파견 문제를 떼어내려 한 대의원대회에서도 전투적인 정규직 대의원들이 강력 반발했다.

사측의 ‘쓰레기 안’ 폐기를 위한 선언 운동에 며칠 만에 정규직 활동가 1백여 명과 조합원 5백여 명이 동참한 것도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이런 가능성을 확대하며,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힘을 키워야 한다.

물론, 이번 잠정 합의안이 부결된다고 해도, 문용문 지도부는 다시 파업을 재개하기보다는 재협상을 통해 적당한 수준에서 임단투를 마무리하려 할 것이다. 현재, 이런 정규직지부 지도부를 강제하거나 뛰어넘을 만큼 현장 조합원들의 투지와 자신감이 높지는 않은 상황인 듯하다.

하지만, 투쟁이 최종 끝나지는 않았다. 정규직지부 지도부가 합의한 내용이 주간연속2교대에서도 너무 미흡하고 모호한 점이 많기 때문에 임금, 노동강도 문제 등에서 계속해서 “노사간 마찰이 불가피”(〈매일노동뉴스〉)한 상황이다. 불법파견 문제는 아직 실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따라서 현대차의 정규직·비정규직 투사들은 기층에서 단결 투쟁을 건설하며 전진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투쟁을 돌아보며, 노조 지도부가 싸울 땐 힘껏 투쟁을 밀고 나가고, 그들이 회피할 때 대체해서 싸울 수 있는 현장노동자들의 조직이 절실하다는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아우르는 이런 현장노동자들의 네트워크는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을성 있게 이런 네트워크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런 조직 건설에는 부문을 뛰어 넘어 투쟁하려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작업장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