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아공을 이끌고 있는 ANC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와 맞서려 하지 않았다. 외려 그들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공정한” 자본주의를 바랐다.

ANC 지도자들은 사장들과 “협력 관계”를 확립해 번영을 꾀하려 했다. 그러나 자국과 해외의 힘센 기업, 지주, 은행의 선의에 기댄 대가로 ANC는 대중에게 한 공약을 내팽개쳐야 했다.

이러한 과정은 1994년 선거 이전 ANC가 주도한 과도정부 시절 이미 시작됐다.

패트릭 본드에 따르면, “과도정부가 맨 처음 취한 조처는 국제통화기금(IMF)한테서 차관 8억 5천만 달러를 받는 것이었다.

“주요 경제지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이 차관의 비밀 요구 조건에는 전통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흔히 등장하는 항목들이 포함돼 있었다. 저율의 수입 관세, 공공 지출 삭감,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의 대폭 삭감 등이 그러했다.”

집권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ANC는 세계은행의 조언을 따라 더욱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정책을 도입했다. 장관들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대책이 경제 붕괴를 막을 유일한 대안이라고 항변했다.

ANC는 “삼자동맹”의 파트너인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공산당 지도자들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이러한 정책 전환에 그저 불평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이들은 ANC를 비판할 수는 있었지만, 어떠한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이들은 똘똘 뭉쳐서 어떠한 체계적 저항도 일어나지 못하게 억눌렀다. 세계에서 가장 잘 조직되고 전투적인 노동계급 가운데 하나였던 남아공의 노동자들은 공산당 지도부가 ANC 정권의 방향 전환을 정당화하고 나서자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노조의 투사들도 파업을 고무하기보다 파업을 중지시키는 일에 연루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는 재앙이었다. 물론 1994년 이래 약간의 변화들도 있었다. 주택 보급이 늘었고, 더 많은 사람이 전기를 공급받게 됐고, 학교와 병원도 늘었다. 그러나 턱없이 모자랐다.

과정

한편 소수 흑인 엘리트들은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 가운데는 광산 노동자들의 지도자였던 시릴 라마포사 같은 과거 선동가들도 있었다. 라마포사는 여러 기업의 이사 자리를 손아귀에 넣고 치부했다. 그러나 평범한 흑인들의 소득은 1995년에서 2008년 사이 평범한 백인들에 비해 실질적으로 감소했다.

반아파르트헤이트 활동가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ANC 정부가 “자신들만 돈벌이 기회에 편승하고서는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하고 일갈했다.

최근 UN 보고서를 보면 남아공 어린이 가운데 1백40만 명이 오염된 식수를 공급받고 있고 1백70만 명이 판자집에서 살고 있다. 보통 이러한 판자집에는 제대로 된 침실도 없고, 주방이나 수도 시설도 없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들 탓에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남아공 정부가 자본에 맞서기보다 저항을 제압하기로 했듯이 ANC도 탄압으로 돌아섰다.

그러므로 마리카나 학살은 더 광범한 과정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 그러한 과정의 단절이 아니다. 그러나 반격 또한 계속될 것이다. 남아공에서는 다른 어느 곳보다 반란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파업, 타운십에서의 시위, 도로 봉쇄, 점거 등이 계속되고 있다.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 위원장인 즈웰린지마 바비는 2년 전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는 이미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미 들썩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은 불결한 곳에서 지내는데 흑인 엘리트와 백인 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부를 과시하고 있는 광경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것에 넌더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옳다. 지금 과제는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뜨린 수단들을 당면 요구들을 쟁취하는 데 사용하고, 사장과 정부에 맞서서 노동계급을 단결시키고 또한 자본주의 자체에도 맞서는 것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