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를 믿을 수 있을까?

 

국회에서 노무현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이제 헌법재판소로 공이 넘어갔다.

이번 재판에서 검사 역할을 하는 국회 법사위원장 김기춘은 박정희 독재 연장을 뒷받침한 유신헌법 초안을 만든 자다. 1972년에 유신헌법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온 한태연 교수에 따르면 “법무부에 가보니 신직수 법무부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법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

게다가 김기춘은 1992년 대선 직전에 부산시장과 부산지방경찰청장 등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이른바 ‘초원복국집사건’을 주도했다.

그 때, 그는 “김영삼 후보가 낙선하면 부산 사람들은 모두 영도다리에 빠져죽어야 한다.”며 지역주의를 선동했다. 또, “당신들이야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해도 괜찮지 뭐 …. 우리 검찰에서도 양해할 것”이라고 말하며 관권 선거를 부추겼다. 이런 자가 노무현의 선거 개입을 조사한다는 건 완전한 코미디이다.

많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고려는 배제한 채 법률에 따라 올바른 판결을 할 거라고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예컨대, 1990년 국가보안법 합헌 판결은 “순수하게 법률적 측면에서 보면 위헌이지만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남북 대치상황 등 국가적 현실을 고려”(〈한국일보〉 1990년 4월 3일치)한 정치적 판단이었다.

 

압력

 

1996년 ‘5·18 특별법’ 합헌 판결도 “실질적으로는 특별법의 위헌가능성을 지적하면서도 … 사실상 정치적 요구를 절묘하게 수용”(〈한국일보〉 1996년 2월 17일치)한 결정이었다.

보수언론들은 “헌재는 법률보다 상위법인 헌법에 대해 유권 해석을 하기 때문에 … 법관 개인의 성향이나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아 결국 재판관들의 정치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재판의 주심인 헌법재판관 주선회는 1987년 부산지검 공안부장검사 시절에, 대우조선 파업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노무현을 구속한 장본인이다. 또, 1995년에는 대검 공안부장으로서 제5기 한총련에 대해 이적규정을 내려 한총련 탄압에 앞장섰다.   

이미 우익은 압력을 넣고 있다. 노무현 정부를 친북·반미라고 규정한 외교평론가 이장춘은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와 국가의 운명을 감안한 정치적 판단”을 내려 “노무현 현상에 종지부를 찍”으라며 탄핵을 촉구했다(〈중앙일보〉 2004년 3월 17일치). 《월간조선》의 조갑제는 “헌법재판소는 … 여론으로부터도 독립되었음을 보여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헌재의 탄핵 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촛불집회는 자제돼야”한다며 헌법재판소에 대한 왼쪽의 압력을 차단하려 했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는 준법서약제, 국가보안법, 낙선운동 등에 대해 보수적 평결을 해왔다.

항의 행동을 계속 확대해 헌법재판소에 정치적 압력을 가해야만 확실히 탄핵을 막을 수 있다.

강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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