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권한대행 고건 - 독재 정권의 전문 하수인

 

고건은 독재 정권 때부터 관운을 놓친 적이 없다. 고건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내무부 관료로서 새마을 운동을 주도했다. 유신체제에 항의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때에 그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는 1975년에 전라남도 지사의 자리에 올랐고, 광주 학살이 벌어진 1980년에는 교통부 장관을 지냈고, 농수산부 장관을 거쳐 1985년에는 민정당 국회의원이 됐다. 6월항쟁이 한창인 1987년에도 그는 민정당 국회의원이었다.

“처세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김영삼 정권 때 국무총리를 거쳐 다시 서울 시장이 됐다.

독재 정권에 충성했던 전력에 걸맞게, 고건은 서울시장으로 있는 동안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위해 상암동 부지를 무상 제공하겠다고 공표했다.

“미스터 클린”으로 불리는 고건은 실제로는 추악한 부패 전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친족이 경영하는 회사는 나스닥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12개 금융기관으로부터 3조 1천5백억 원의 막대한 돈을 부정 대출 받았다.

이를 위해 고건은 서울시장 직위를 이용해 대학 선배인 이홍구 전 주미대사와 이홍구의 사돈인 전 수출보험공사 사장한테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고건 아들의 회사도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고건의 친족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진 체육복표 사업자에 선정되는 특혜를 입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은 고건이 민선 서울시장 자리에 있을 때의 일이다.

고건은 1996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그는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생태 골프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만들면서까지 난지도 골프장 건설을 강행했다.

그는 1999년에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에 손해배상과 가압류 조치를 휘둘렀고, 현대차 노동자들의 파업에 “긴급조정권”으로 대응하려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건은 제주 4·3 특별법 제정과 호주제 폐지에 반대했다. 작년에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등을 연일 소집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상경하지 못하도록 별의별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작년에 방한한 미 국방부 부장관 폴 월포위츠가 한국 정부의 군사비 증액을 요구하자마자 고건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방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런 전력에 어울리게 고건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자마자 “이라크 파병과 한미 동맹의 강화[등을] … 차질없이 추진”하고 “불법 집단행동이 일어나거나 국내 치안 질서가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엄정 대처”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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