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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대학 선정 정책 ─ 파렴치한 고통 전가

교과부가 ‘부실’ 대학을 선정해 발표하자 해당 대학 학생과 졸업생 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가족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이력서에 출신 대학 삭제해야 할까요?”, “이 치욕이 십 년은 갈 겁니다”, “부모님이 ‘그러려고 너 마이너스 통장 대출 내서 학비 내고 그렇게 힘들게 다녔냐?’ 하시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9월 10일 ‘부실’ 대학 선정에 항의하며 본관 로비를 점거한 국민대 학생들 ‘부실’ 교육의 책임은 학생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투자를 내팽개쳐 온 정부와 대학 당국이 져야 한다. ⓒ사진 제공 국민대 학생

‘부실’ 대학 학생들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실제 부실한 교육 환경과 ‘부실’ 대학 학생이라는 낙인 때문이다.

부실한 환경에서 교육받고 싶은 학생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의 대학생들은 정부 정책과 대학 재단들의 탐욕 때문에, 1년에 1천만 원가량의 값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낮은 교원 충원율, 캠퍼스 상업화, 재단 비리 등 질 낮은 교육 여건을 강요받았다.

정녕 정부가 대학들의 교육 여건이 부실하다고 여긴다면, 그 대학들이 부실하지 않도록 재정을 투여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하도록 감독하면 될 일이다. 취업률이 낮은 것이 문제라면, 정부 자신이 부자 증세를 통해 공공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하면 된다.

그러나 ‘부실’ 대학 낙인찍기와 함께 도리어 이들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하고 있다.

이는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취업률이 낮다고 부실대로 낙인찍으면, 앞으로는 취업이 되기나 할까?’ 하고 분노하고 있다. 또한 재정지원을 하지 않으면 사립 재단들의 등록금 의존과 지출 삭감 유혹이 커질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하다.

이렇듯 정부의 ‘부실’ 대학 선정 정책은 부실 교육의 책임을 떠넘기며 학생들이 고통을 짊어지도록 강요하는 파렴치한 짓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자존감을 짓밟는 행위다.

한편, ‘부실’대로 선정된 대학의 당국도 학생들에게 부실한 교육 환경을 강요한 장본인이다. 세종대는 옛 비리 재단이 복귀하면서 전횡을 일삼고 있고, 국민대의 경우도 전임교원 확충 요구와 등록금 추가 인하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이들은 학생들이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서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학생들이 원하는 개선안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학 당국들은 대학 평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재학생 충원율과 취업률 지표가 낮은 학과에 대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2011년 선정된 ‘부실’ 대학 중 하나였던 원광대에서 바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원광대 당국은 ‘부실’ 대학 선정 6개월 만에 정부의 대학 평가 하위 15퍼센트 기준을 모방한 학과 평가 하위 15퍼센트 기준을 세워 11개 학과를 폐과하거나 통폐합했다.

정부와 대학 당국은 학생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데에는 한통속이다. 우리는 이와 반대로 부실한 교육의 책임을 정부와 대학 당국에 물어야 한다. ‘부실’ 낙인 찍기를 중단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을 강화하도록, 사립 재단들의 자산을 교육 환경 개선에 쓰도록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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