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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탄핵 반대 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

민주노총이 탄핵 반대 투쟁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

민주노총이 탄핵안 의결에 항의하는 잔업 거부를 매주 수요일 하기로 결정하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것이 불법이라며 발끈했다. 경총은 주동자와 참가자 모두에게 손해배상 고소고발과 형사상 고소고발과 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결정이 근로조건 개선과는 동떨어진 ‘정치파업’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주들이 발끈하는 진짜 이유는 탄핵 반대 투쟁이 노동자 투쟁과 결합되면 위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이것이 자기들에게 양보를 강제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전경련 부회장 현명관은 “국민불안심리를 증폭시키는 이벤트를 하면 안 되며, 현시점에서 노사 분규가 일어나면 큰일이다”고 걱정했다.

기업주들은 보수 우익이 목소리를 키우는 사회적 분위기일 때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옥죄기 편하지만, 그 반대일 때는 노동자들이 기를 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한 기업의 노사 관계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정치 상황에 의해 크게 영향받는다. 거꾸로, 거대 규모의 노동자 투쟁은 정치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이 분리돼 있지 않다는 점은 투쟁의 역사 속에서 거듭 확인돼 왔다.

군사독재는 노동자 착취 강화를 보증해 주었고 민주주의 억압은 공장 내 억압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다. 1987년 거리에서 군사독재를 항복시킨 노동자들은 경제적 요구를 내걸고 싸울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시작된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이번에는 독재 정권이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를 돌이킬 수 없도록 못박는 구실을 했다.

타협

보수 우익의 반격은 노동자·민중 운동과 무관한 순전한 지배계급 내부 정쟁이 아니다.

30여 년 동안 고성장에 익숙하던 한국 경제가 저성장 단계에 접어든 한편, 노동조합의 전투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기업에 대한 대중의 반감(반자본주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이 커가는 상황에서 보수 우익이 더는 참을 수 없어 반격에 나선 것이다.

지난 1년 노무현의 노사정책은 노동자에 대한 배신으로 점철됐지만 보수 우익은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에서 “불법파업을 부추”긴 노무현의 노사정책도 탄핵 사유에 추가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예상보다 거센 저항에 직면한 보수 우익은 반격의 기회를 노리며 저항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들에게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는 탄핵 반대 투쟁에 노동자들과 좌파들이 대거 참가해 이 운동을 한층 급진화시키는 것이다.

경총 회장 이수영은 “놀라고 불편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시민집회에 노동단체들이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걱정스럽기는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전경련을 찾은 정동영은 “경제 안정 지도자 회의를 한 차례 더 개최하도록 고 권한대행에게 건의하겠다”며 “이 자리에 노동계도 참석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아직 저들에게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대로 되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시민운동 수준에 발맞춰야 한다’는 주장과 ‘어쨌든 노무현 탄핵은 좋은 일 아니냐’는 주장 사이에서 뜨뜻미지근한 수준의 투쟁을 결정했다.

“자칫하면 ‘친노무현 대 반노무현’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노사모’ 판에 끼어 싸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걱정과 노무현에 대한 증오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와 친노 사이의 차이와 경계가 흐려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 투쟁에 적극 참가하길 주저한다면 “주도적인 실천을 하며 국면을 이끌” 수 없다.

민주노총의 참가는 노동자와 친노 사이의 경계를 흐리기는커녕 이 투쟁을 친노 운동으로 치부하려는 우익의 비방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반증이 될 것이다.

이미 탄핵 반대 투쟁 안에는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지만 보수 우익의 노무현 탄핵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정치적 지지를 노동자 운동 쪽으로, 진보 진영 쪽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노동자 운동의 적극 참가가 중요하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은 계급 투쟁의 복잡함과 전술적 타협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1916년 영국 제국주의에 항거해 일어난 아일랜드 더블린 봉기를 당시 좌파들이 깎아내리자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좌파도 이 말을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식민지와 유럽에서 소수 민족들의 반란 없이, 온갖 편견을 가진 쁘띠 부르주아 계층의 혁명적 분출 없이, 지주·교회·왕정의 억압과 민족 억압 등등에 대항하는 정치 의식 없는 프롤레타리아와 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운동 없이도 사회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 이런 생각은 모두 사회 혁명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군대가 한 장소에 죽 늘어서서 ‘우리는 사회주의에 찬성한다’ 하고 말하고 다른 군대는 다른 곳에서 ‘우리는 제국주의에 찬성한다’ 하고 말하는 것이 사회 혁명일 것이다! 오직 터무니없이 현학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일랜드인들의 반란을 ‘폭동’이라고 부르며 비방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사회주의 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살아 생전에 결코 그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말로만 혁명에 동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