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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승리를 거둔 캐나다 퀘벡 학생 투쟁

 캐나다 퀘벡 주 학생들이 주정부에 맞선 8개월간의 투쟁 끝에 중요한 승리를 쟁취했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요크대 정치학 박사로, 활동가이자 작가로서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그렉 샤저가 이 소식을 〈레프트21〉에 보내 왔다.

캐나다 퀘벡 주의 학생들이 역사적 승리를 쟁취했다. 대학 등록금 인상에 맞선 여덟 달에 걸친 긴 동맹휴업 끝에 학생들은 75퍼센트 인상을 취소시키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끝장냈다.

퀘벡 학생들은 1960년대 이후 여섯 번의 거대한 동맹휴업을 건설하는 등, 전통적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투쟁해 왔다. 그 결과, 퀘벡의 등록금은 캐나다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2011년, 퀘벡 자유당(PLQ) 주정부가 등록금을 2012년부터 5년에 걸쳐 75퍼센트 인상하겠다고 고지했다. 이는 사실상 가난한 사람들이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수익자 부담’의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의 첫 단계였다.

학생들은 2월 13일에 동맹휴업에 돌입했다. 6개월 넘게 고등학생·대학생 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학교 봉쇄와 거리 행진을 시작했다. 정부는 5년이 아니라 7년에 걸쳐 인상하겠다며 작은 양보를 했지만, 이 역시 학생들의 대중적 반대에 부딪혔다.

이에 정부는 ‘법률 78호’(후에 ‘법률 12호’)을 공표해 50인 이상이 모이려면 경찰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학생들을 겁주려는 의도였지만, 정반대의 효과를 냈다. 25만 명이 이 법안에 맞서 행진했고, 그밖에 수많은 행동이 촉발됐다. 법률은 사실상 사문화했다. 운동은 학생들의 권익을 지키는 것에서 모든 퀘벡인들의 시민적 자유를 지키는 것으로 확대됐다.

정부는 몇 달 동안이나 학생들이 탐욕스럽고 분수를 모른다고 우기더니, 9월에는 정부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선거를 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선거에서 졌고, PLQ 당원인 주지사 자리도 잃고 자기 의석도 지키지 못했다. 새롭게 선출된 퀘벡당 주정부는 등록금 인상을 취소했다.

이 거대한 승리는 많은 교훈을 주는데,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첫째, 학생과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

이 투쟁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때로 사회주의자들은 학생운동이 노동 쟁점을 다루지 않는다며 무시하는데, 학생들 자신이 노동자이기도 하다. 캐나다에서는 거의 50퍼센트 학생이 재학 중에도 직업을 갖고 일한다. 등록금을 내주는 부모들도 노동자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보기에 등록금 인상은 더 거대한 신자유주의 어젠다의 일부였다. PLQ 주정부는 공공기관을 사유화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사회복지를 삭감하는 데 열심이었다. 이에 맞서, 학생들은 등록금 철폐,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무상교육, 자본의 탐욕이 아니라 사람의 필요를 우선하는 경제 등의 급진적 요구를 냈다. 학생들은 퀘벡 주정부가 원주민들이 사는 퀘벡 북부 지역을 개발하려는 계획에 맞서서도 시위를 벌였다. 학생 활동가들은 이 투쟁을 퀘벡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투쟁으로 만들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자운동’ 사이의 분단선은 무너졌다.

둘째, 자발적 행동에는 계획이 필요하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몇몇은 시위대 자신이 연출했다.

동맹휴업 3개월 째, 시위대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밤중에 동네를 행진하는 ‘캐서롤 시위’를 퀘벡 전역에서 벌이기 시작했다. 이 시위는 학생들의 빈곤과 신자유주의적 개악이 본질적으로 생존권 문제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동맹휴업은 예술이 만개하는 계기도 됐다. 퀘벡에서 가장 큰 도시인 몬트리올은 작고 빨간 사각형 수천 개로 꾸며졌다. 이 사각형은 ‘대학생 부채가 학생들을 적자 상태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로 2005년부터 퀘벡 학생운동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겉옷에 빨간 사각형 천을 붙였고, 그래피티, 포스터, 심지어 창문에 붙이는 빨간 테이프 조각 같은 것으로도 빨간 사각형을 표시해서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이 모든 자발성은 몇 년에 걸친 계획의 산물이었다. 퀘벡에는 민주적 학생들이 대중 집회를 조직해 온 수십 년의 전통이 있다.

2001년에 급진 좌파들은 주류 학생회들보다 더 왼쪽에 있는 전투적 학생회들의 연합 조직인 ‘학생회 연대 연합’(ASSE)을 만들었다. 2000년대 동안 ASSE는 지역 학생들의 요구에 귀기울이고, 응답해 왔다. 정부가 2011년에 등록금 인상안을 발표했을 때, ASSE는 재빨리 학생들의 분노를 구체적 요구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또 ASSE는 유연성을 발휘해 ‘학생회 연대 대연합’(CLASSE)이라는 공동전선을 건설했다. CLASSE는 곧 65개의 학생회와 회원 10만 명을 보유한 단체로 성장했다.

우익 언론들이 가끔 주장하는 것처럼, 급진 좌파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계급 의식을 부당하게 이용해 먹은 것이 아니었다. 운동이 최고점에 있을 때 치고 빠졌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좌파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을 몇 년에 걸쳐 참을성 있게 건설한 것이었다.

셋째, 긴 투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승리는 부분적이다. 등록금 75퍼센트 인상 계획은 취소됐지만, 운동의 지도자들은 단지 사유화 저지만 호소했던 것은 아니다. CLASSE가 7월에 “우리는 의사결정과 우리의 삶을 조직하는 방식이 공유되는 사회를 창조할 것이다” 하고 선언한 것처럼 말이다.

많은 활동가들은 학생운동의 에너지가 퀘벡당 같은 신자유주의 정당에 투표하는 것으로 귀결된 데에 실망했다. 퀘벡당은 선거에서 사회운동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는 결국 삭감을 추진해 온 정당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인데, 지난 몇 년 동안 지배자들이 세상을 망쳐놓았음에도, 8개월 간 경찰 폭력과 체포를 뚫고 계속된 대중행동으로도 자본가들의 정책 중 겨우 한 부분을 뒤집은 것이다.

운동이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대중 행동이 필요하고, 퀘벡 노총, 여성주의자, 원주민 단체 등과 동맹을 맺어야 하며, 선거 정치보다는 계급투쟁을 중시하는 정치적 지도력도 필요하다.

퀘벡 학생들의 투쟁은 대중 행동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어디서나 지배계급이 자신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 드는 이 세상에서, 이는 배우고 기릴 만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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