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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으로 들끓는 유럽
우리도 준비하자

지난 몇 년 동안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 속에서 허리띠 졸라매기를 거부한다면 국제적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놔 왔다. 그러나 9월 마지막 주에 유럽을 휩쓴 긴축 반대 파업과 시위는 이런 주장에 정면 도전하며 국경을 뛰어넘는 노동자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긴축에 맞서 그리스에서는 지난 26일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였다. 그리스에서는 경제 위기가 시작된 이후 이미 20여 차례 총파업이 있었다. 우파는 지난 6월 근소한 차이로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총파업을 막을 수 없었다.

9월 25일 4만여 명이 모인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 ⓒ출처 Fotomovimiento (플리커)

포르투갈에서는 9월에만 1백만 명이 참가한 두 차례의 시위를 포함해서 크고 작은 시위가 계속 열렸다. 이는 집권 세력을 분열시켰고 결국 정부는 긴축 조처를 부분적으로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9월 25일 4만여 명이 의회를 포위했다. 7월 광원들의 영웅적인 파업 행진 이후 스페인에서는 수만 명이 참가하는 긴축 반대 시위와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마드리드 도심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간에 시가전에 가까운 충돌이 벌어졌다. 긴축이 낳은 긴장은 바스크와 카탈루냐에서 분리 운동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긴축에 반대하는 정서에 힘입어 사회당 올랑드가 대통령에 당선했지만 그는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치려고 한다. 재정지출을 법으로 제한하는 유럽재정 협약의 의회 승인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지난 30일 파리에서도 10만 명이 긴축에 반대해서 행진을 벌였다.

이탈리아에서도 양대 노총의 호소로 공공부문 노동자 3만 명이 정부 긴축에 반대하는 파업 행진을 벌였다. 앞장서서 다른 나라들에게 긴축을 강요한 독일에서도 40개 도시에서 수만 명이 부자 증세를 요구하며 행진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6월 30일에 75만 명, 11월 30일에는 무려 2백50만 명이 긴축에 반대해서 역사적 총파업을 벌인 바 있다. 영국 노동자들은 다가오는 10월 20일에도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이 체제와 지배계급의 거짓말이 파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배자들은 일시적으로 긴축을 받아들이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9월 29일 포르투갈 노동자총연맹이 조직한 긴축 반대 파업 집회에 10만 명이 모였다. ⓒ사진 출처 Bloco (플리커)

지난해 그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프랑스로 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떠들면서 긴축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여전히 유로존에 남아 있는데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위기에 빠졌다.

동시에 긴축이라는 고통은 그리스 국경 밖으로 계속 확대됐다. 지난 4월 그리스에서는 한 노인이 “쓰레기 속에서 먹을 것을 뒤지기 시작하기 전에 품위 있게” 죽겠다며 공개적으로 자살해서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스페인에서는 실업자들이 식량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막으려고 정부가 자물쇠를 설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제가 회복되리라는 기대가 꺾인 노동자와 청년층이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할 수 있다고 나섰지만 이들의 불신을 되돌리지도 못했고 위기를 해결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경제 위기가 정치 위기로 전환하는 것은 11년 전 아르헨티나를 떠올리게 한다.

아르헨티나

2001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IMF한테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혹독한 긴축을 추진했다. 이런 고통전가를 순순히 받아들이길 거부한 노동자 파업과 시위의 결과로 한 달 동안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었고 IMF한테 빌린 돈은 사실상 탕감됐다. 주류 언론들은 “혁명 직전”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노조 지도부는 ‘금융자본’을 비난하며 ‘산업자본’과 노동계급 사이에 협력을 강조하는 페론주의를 채택했고 결국 구체제는 유지됐다. 이후 아르헨티나 경제는 연평균 8퍼센트나 성장했지만 노동자 임금은 2007년까지도 2001년의 70퍼센트 수준을 유지했다.

따라서 좌파는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대안적인 체제로 이행을 촉진할 수 있는 요구, 즉 이행기적 요구를 제기해야 한다.

대안 논쟁이 가장 첨예한 곳은 그리스다. 그리스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연합체인 안타르시아는 유로존을 탈퇴해 은행 빚 갚기를 거부하고 노동자와 서민의 복지와 생계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그리스에서 이런 요구가 실현된다면 다른 유럽 은행과 나라가 연쇄적으로 파산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물가가 치솟아 경제는 끝장나고 각국은 그리스를 ‘왕따’시킬 것이라고 떠든다. 영국 총리는 유로존 붕괴 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리스로부터 ‘경제적 난민’의 이주를 막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저들이 바라는 미래일 뿐이다. 그리스 운동이 고립되기는커녕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다.

유럽 전체로 확산 중인 노동자 투쟁은 그런 얘기가 결코 낭만적 공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노동자를 살린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위기는 야만을 불러올 수 있다. 그리스 황금새벽당과 프랑스 국민전선과 같은 인종차별적 파시스트가 이슬람 혐오증을 부추기며 성장하는 것은 이것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보여 준다.

파시스트들은 개혁주의 정부의 한계와 그것이 낳는 환멸을 이용해서 성장하려 든다.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올랑드는 긴축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비위생적이라며 집시촌을 강제로 해산했고,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한 잡지에 대한 항의 시위를 금지했다.

그 결과 올랑드의 지지율은 취임 1백 일 만에 44퍼센트로 곤두박질쳤다. 르펜의 국민전선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부추기며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다.

유럽 사회주의자들은 독자적 주장과 대안을 내놓으며 개혁주의 대중 속에서 투쟁을 건설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하고 있다.

대선 이후 본격화할 고통전가에 맞선 투쟁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에게 유럽의 노동자들과 좌파는 큰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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