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적 경쟁과 갈등의 격화가 동아시아에서 일련의 영토 분쟁과 군사적 충돌로 나타났다. 천안함 사태, 연평도 상호 포격, 난사군도 주변에서 벌어진 대규모 군사훈련,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에서 일본과 중국이 충돌한 것이 그 결과다. 

일련의 분쟁은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과 기존 동맹국들의 합동군사훈련 → 중국의 해군력 증강 → 이를 견제하기 위한 동아시아의 주요 요충지가 될 만한 섬 주변의 군비증강’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미국은 동아시아 주요 해역에 항공모함 2개 전단을, 중국은 핵 잠수함과 미사일 부대를 배치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금 동아시아가 군비증강이 가장 급속하게 이뤄지는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시아 군비증강과 중미 갈등의 주요 무대 중 하나는 동아시아의 도서 지역들이다. 중국이 남중국해·동중국해의 군사기지들을 해군력 증강의 주요 교두보로 삼고 있고, 미국은 유사시 중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이 지역을 핵심 전진 기지로 삼으려 한다. 

미국이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에 신형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를 배치한 것도, 대만에서 겨우 1백 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요나구니 섬까지 일본 자위대가 방어선을 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제주 해군기지가 있다.

동아시아 해상 요충지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이 계속 고조되고 있는 지금,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데 발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견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이어도에 중국이 무인항공기를 배치해 해역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최남단 섬인 마라도에서 1백49킬로미터, 중국 동쪽 퉁다오에서 불과 2백47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수중암초가 동북아 영토 분쟁의 새로운 지역으로 추가될 수도 있다.

네 번째 시도

사실 제주도는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이 재편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군사기지화 대상이 돼 왔다. 정영신은 ‘동아시아 지평에서 바라 본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라는 논문에서 제주도와 오키나와 문제를 동아시아의 체제 변동의 역사와 연결시켰다. 

그에 따르면 제주도 군사기지화 압력은 네 번 있었는데, 모두 세계 강대국 질서가 재편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1945년 2월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던 일본은 결전 계획인 ‘결7호작전’을 기획했는데, 이것은 제주도를 군사기지화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제주를 위협하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중단돼야 하고, 우리는 진정한 ‘해적’인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 ⓒ이윤선

오키나와에서 미군과 일본군 사이의 격렬한 지상전이 벌어졌을 때, 제주도에서는 본격적인 기지화 작업이 진행돼 병력 7만 5천 명이 집결하고 동굴진지와 비행장이 건설됐다. 

일본의 항복 이후에도 제주도는 거듭 군사기지 건설 대상이 됐다. 미국의 경제력 쇠퇴와 베트남전 패배, 일본의 부상 등으로 오키나와 반환 문제가 불거지자 한국의 보수 우익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이들은 오키나와의 대안으로 제주도에서 군사기지를 만들 것을 미국에 제안한다. 

1969년 박정희는 제주도를 공군기지와 해군기지로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미 당국자들에게 여러 차례 확인해 줬다. 오키나와 미군기지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제주도 군사기지 건설은 중단됐다. 

냉전 해체 분위기가 고조되던 1980년대 말에 필리핀에서 미군기지 철수 운동이 강력하게 벌어지자, 미국은 필리핀에서 철수할 경우 공군은 싱가포르나 괌으로, 해군은 일본의 사세보나 한국의 남부 항구로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했다. 미국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제주도 송악산 일대와 서산 해미 등 여러 곳에 공군기지 확충을 시도했다.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수포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한국 정부와 해군이 현재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말라카 해협의 ‘해적’은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 피해액은 건당 5천 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2005년 말라카 해협을 지나간 상선 6만 3천 척 중 해적들에게 공격받은 선박은 9척에 불과했다.(참여연대 제주 해군기지 관련 이슈 리포트) 

또, 미군이 해군기지 시설을 활용하려면 한국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지만, 아직도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 4조, SOFA 10조 3항의 규정에 따라 미군 함정은 한국 항구에 입항할 때 ‘통고’만 하면 된다.

친미 우익을 대표하는 박근혜의 입장에 대해서는 달리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안철수와 문재인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자신의 책 《안철수의 생각》에서 “대외 정책에서 각자 다른 색깔을 취해 온 정부들이 모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며 기지 건설 찬성 입장을 냈다. 문재인은 공사는 중단돼야 하지만 제주 해군기지는 찬성한다는, ‘네모난 삼각형’ 같은 모순된 입장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 이를 중단시키면 동아시아 긴장 고조를 막을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참가하는 생명평화대행진이 대선을 앞두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등을 요구하며 전국을 일주하고, 11월 3일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기로 한 것은 의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