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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과잉’이 유럽 경제 위기의 원인인가

보수 언론은 대선을 앞두고 복지 의제가 부각되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며 틈만 나면 복지 때문에 유럽이 위기에 빠졌다며 복지 확대 열망에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

그러나 유럽 재정 위기가 복지 때문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아전인수식 헛소리다.

경제 위기가 닥치기 직전인 2007년 국민총생산(GDP) 대비 복지비 지출은 그리스는 21.3퍼센트, 스페인은 21.6퍼센트로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언론들은 그리스인들을 마치 베짱이처럼 묘사했지만 그리스 노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1백 시간으로 한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고, 독일 1천4백 시간에 견줘 1.5배나 된다.

또 일각에서는 남부 유럽 국가들이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2003년 그리스의 노동소득분배율은 36퍼센트, 이탈리아는 42퍼센트로, 74퍼센트인 독일에 비해 턱없이 낮을 뿐 아니라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였던 유로존 통합 자체의 모순이 2008년 세계경제 위기와 만나 폭발했기 때문이다.

1999년 유로존 통합은 독일 자본가들에게 큰 기회였다. 남부 유럽 국가들과 통합해 화폐가치가 떨어진 덕분에 독일 자본가들은 수출에서 크게 이득을 보며 막대한 수익을 누렸다. 독일 수출의 60퍼센트는 유로존 내 다른 국가들에게 이뤄졌다.

반면 화폐가치가 올라간 남부 유럽 국가들은 수출에서 손해를 봤고 무역 적자가 쌓였다.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의 상품수지 적자액 중에 유로존 내에서 발생한 것이 90퍼센트가 넘었다.

한편 통합을 통해 남부 유럽 국가들이 빌릴 수 있는 금리는 독일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은행가들과 투자자들은 값싼 신용을 이용해 투기 거품을 일으켰다. 이윤율이 낮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남부 유럽 국가들이 먹잇감이 된 것이다.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 등에서 부동산 거품이 일었고 이에 편승한 은행과 부자들은 큰 이익을 봤다.

문명이 후퇴하는 듯한

남부 유럽 국가에 자금을 빌려 준 곳은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중심부의 은행들이었다. 독일 등 유럽 중심부의 자본가들은 무역 흑자와 함께 자본 수출로 막대한 수익을 누린 것이다.

마치 미국이 중국의 제품을 수입하고, 중국은 벌어들인 돈을 다시 미국에 투자해 쌍둥이 적자가 벌어지며 세계경제가 굴러가는 것과 같은 그림이 유럽 내에서 벌어졌다.

이런 구조에서 부자들은 이득을 봤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고통받았다. 거품과 인플레이션 속에 2000~2008년에 그리스인들의 생활비는 35퍼센트나 올랐다. 값싼 신용에 의지해 투기를 벌인 그리스 국가의 부채도 치솟았고, 거품 속에 스페인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빚도 1999~2008년 10년 동안 세 배로 늘었다.

이런 거품이 2008년 세계경제 위기를 맞으며 터진 것이다.

위기가 터지자 남부 유럽 국가들에 돈을 빌려 준 독일과 프랑스 등의 은행과 자본가들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혈안이 됐다. 투기를 통해 이제까지 막대한 돈을 벌었지만 손해는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위기에 빠진 국가들에 흡혈귀처럼 들러붙어 긴축을 채찍질하며 빚 갚기를 강요하고 있다.

유럽 지배자들은 그리스, 스페인 등에 구제금융을 쏟아부었지만 이는 결코 가난한 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는 국가부채 규모가 GDP의 1백50퍼센트일 때 국채 금리 6퍼센트를 적용하면 GDP의 9퍼센트를 이자로 지불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 정부 세수의 25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원천적으로 유지 불가능한 비율인데 이미 그리스의 국가부채는 GDP의 1백6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래서 그리스 사회주의자 소티리스 콘토야니스가 말했듯 “현재 그리스의 대형 은행 7개와 유럽 은행 서른 개가 그리스 공무원 전원과 연금 생활자들이 받는 것만큼이나 많은 돈을 이자로 챙겨가고 있”는 동안 그리스와 스페인 민중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문명이 후퇴하는 듯한 경험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과 자본가들이 강요하는 야만적인 빚 갚기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남부 유럽 국가들의 위기는 결코 노동자들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거품으로 이득을 본 자들이 그 손실도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