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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천의봉 철탑 일기 ①:
15만 볼트 송전탑에서 비를 맞으며

현대차 비정규직 천의봉, 최병승 동지가 15만 4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비와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목숨을 건 철탑 고공농성을 보름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레프트21〉은 천의봉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쓴 철탑 일기를 〈프레시안〉, 〈참세상〉, 〈레디앙〉 등과 함께 공동 게재할 예정이다.

2012년 10월 22일, 농성 6일차

15만 볼트 송전탑에서 비를 맞으며

비가 온다 해서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 다행히 아침에 눈을 뜨니 비는 오지 않았다. 철탑을 지킨 조합원 100여 명이 있었기에 철탑 위의 날씨는 후끈하게 느껴졌다. 평소 ‘출근 투쟁’ 대오보다 많은 100여 명이 모여서 일주일을 알리는 투쟁을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여기를 사수하느라 지칠 만도 한 조합원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여기를 사수하고 있다. 오늘부터는 사수 대오가 줄어든다. 조합원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현장으로 돌아간다.

저녁 내내 잠잠했던 철탑 위 하늘엔 먹구름이 뒤덮였다. 하늘도 뭔가 비장한 각오를 한 모양이다. 비 올 채비를 마친 상태다. 좁은 공간에 걸친 판자는 바람 때문에 요동을 친다. 울산본부 주최 문화제가 열린다. 그렇지만 하늘은 우리에게 공간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화제 시작과 동시에 비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여기 내가 있는 곳은 15만 4천 볼트 전기가 흐르는 고압전선 송전탑이다. 나는 전기를 무지 싫어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들과 배터리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는데 뒤에서 물고기를 주워담다가 내가 감전되고 말았다. 그 배터리가 차량용 배터리인데 그게 전압이 12볼트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서 별생각이 다 든다. 어렸을 때 12볼트에 잠깐 기절했었는데 천둥번개가 쳐서 철탑으로 전기가 타고 흐르면 이게 몇 볼트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잠깐 후회를 해본다, 술 먹으면서 병승이 형과 약속했던 그날을. 밖에 집회문화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해본다. 비는 와도 좋은데 천둥번개만 치지 말라고.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비로 온몸이 다 젖은 나는 철탑을 잡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나무 합판이어서 전기는 안 통할 거라 생각한다.

폭우로 문화제는 중간에 취소되고, 비를 피하려는 조합원들이 하나둘씩 눈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조합원들이 앞에 있을 때는 괜찮다고 스스로 달래봤는데, 조합원들이 안 보이기 시작하니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담배를 꺼냈는데 이런 젠장! 라이터도 물에 젖어 켜지지 않는다. 입에서는 자연스레 욕이 나온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흐르고 비는 그쳤다.

비 때문에 잠깐 꺼내지 못한 내 전화기엔 수십 통의 문자와 몇 통의 전화가 와 있었다. 힘내라는 문자와 응원 격려 메시지였다. 이 문자를 보며 아까 잠시 후회했던 그 순간이 미워진다. 응원 격려 메시지와 함께 내 마음도 다독여 본다. 이제 내 몸이 나의 몸이 아니라 10년간 현대차에 한을 품고 있는 조합원들의 몸이라고, 850만 비정규직의 몸이라고. 밑에서도 분주하다. 비 맞고 몸 상한 데는 없는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지나가는 비와 함께 나의 하루도 지나간다.

2012년 10월 24일, 농성 8일차

현대자본 심장에 비수를 꽂으리라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을 때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회 임원집행부 카톡 대화방에 “지회장 경찰이 잡아감”이라는 문자가 뜬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벌어진 상황에 다들 어리둥절하다. 곧이어 지회장이 대화방에 뜬다. ‘연행됐으면 어떻게 문자를 남기지’라는 생각에 다시 대화방에 들어가 “이런 장난치지 마세요”라고 남기니 조직부장에게 “장난이 아닙니다”라는 문자가 온다. 순간 머리가 삐쭉 섰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하지?

순간 어제 지회장이 쓴 ‘2차 포위의 날’ 호소문 글귀가 떠오른다. “제가 있는 조합사무실에서 철탑까지는 걸어서 20분입니다. 제가 가서 두 동지의 안전을 확인해야 하지만, 저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수천수만이 저의 눈이 되어 두 동지 안전을 확인해주십시오.”

지회장이 연행된 동부경찰서까지는 차로 20분인데 나 역시 지회장한테 가지 못한다. 참 눈물 난다. 처음 임원으로 결의할 때 박현제 지회장은 결혼 10년이 지나 어렵게 가진 딸이 있었다. 10개월 핏덩이 딸을 두고 노동조합 정상화를 위해 지회장으로 결의했다. 순간 고여 있던 눈물이 주체를 못하고 흘러내린다.

눈물을 머금는다. 잠깐 나약해진 내 마음을 다시 잡아본다. 내가 여기서 나약해지면 안 된다. 회사와 정부의 오판이다. 수장만 잡아가면 이 싸움 못 할거란 오만한 생각, 전체 조합이 지회장이 되고 전체 조합원이 임원이 돼서 다시 들풀처럼 일어서리라. 정몽구에게 반드시 복수할 테다. 기다려라. 이 분노로 반드시 거대 공룡그룹 현대자본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리라.

밑에 조합원들도 힘든 분위기인데, 나보고 먼저 힘내라 한다. 이때 마침 시골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 “아들아 미안하다. 너는 그 높은데 바깥에서 자는데 따뜻한 방에 누워있는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북받친 설움이 다시 한 번 밀려온다. “다 같이 잘살자고 여기서 고생하는 거니깐 조금만 참아 달라”고 어머니를 달래본다. 나를 키우느라고 어머니가 무진장 고생하셨다. 연세가 올해 65세다. 몸도 성한 데가 없다. 이제 제가 어머니 호강시켜 드려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당당히 정규직 쟁취해서 편히 살게 해드릴게요.

아무튼, 오늘 기분은 엉망이다. 오늘부터 한국시리즈 야구가 있다. 내 나이 서른한 살, 아직 꿈 많고 놀러다니고 싶은 나이다. 야구장 가서 쌓인 스트레스나 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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