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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해방운동가 고(故) 김주영 동지를 추모하며:
무엇이 장애인을 죽음의 불길로 밀어 넣고 있는가

10월 26일 새벽 뇌병변 1급 장애인 김주영 씨는 다섯 걸음을 걷지 못해 불길 속에 목숨을 잃었다.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3시간 후에 발생한 사건이다. 만약 24시간 활동보조를 받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다.

지난 2005년 12월에도 중증장애인 조 모 씨가 강추위에 보일러 수도관이 터져 얼어 죽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물이 목까지 차올라도 몸을 움직일 수 없던 그는 방바닥에 누운 채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보조 제도화를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천막농성, 노숙농성, 삭발투쟁, 점거투쟁, 단식농성 등 투쟁 끝에 2007년 활동보조제도가 본격 도입됐다.

그러나 당시 참여정부 복지부 장관이었던 유시민은 장애 당사자에게 본인부담금을 부과하고 국가가 아닌 민간이 서비스 제공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맡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복지의 원칙이 아닌 시장의 원칙으로 제도를 만든 것이다.

10월 30일 고(故) 김주영 장애해방운동가 노제 장애인을 등급으로 분류하고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정부와 체제가 그를 죽인 것이다. ⓒ사진 출처 참세상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본인부담금 인상, 서비스 대상 제한을 고스란히 담은 이 법은 중증장애인의 삶의 질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외줄타기’ 생존

2009년 최대 월 4만 원이었던 본인부담금은 법 개악 이후 2011년에 사실상 3배로 인상됐다. 노동에서 철저하게 소외되는 중증장애인에게 월 12만 원의 본인부담금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 때문에 수급권자 중 26퍼센트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포기하고 있다.

활동보조를 받고 있는 중증장애인의 생존 역시 외줄타기 형국이다. 지난 9월, 근육병을 앓고 있던 고 허정석 씨는 인공호흡기가 빠지는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로 활동보조 서비스를 한 달에 1백 시간밖에 이용할 수 없었고,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후 인공호흡기가 빠져 사망했다. 활동보조인의 퇴근과 어머니의 귀가 사이에는 한 시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 한 시간 때문에 그는 생을 달리한 것이다.

대구의 한 뇌병변 여성 장애인은 출산 후 “독거” 상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활동보조 서비스 1백80시간이 1백 시간으로 줄어드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영아원으로 보내야 했다.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화장실에도 갈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은 물을 마시지 않고 식사량을 줄이는 게 다반사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기본적인 욕구들을 없애는 삶이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고 4대강 사업에 20조 원을 퍼부은 이 정부의 장애인 복지 예산은 GDP 대비 0.6퍼센트다. OECD 평균인 2.1퍼센트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복지 같은 데 재원 쓰면 남는 게 없다”, “복지는 즐기는 것”이라는 전 기획재정부장관 윤증현의 말은 이명박 정부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 준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모두 좀더 나은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는 장애등급제에 대해서 묵묵부답이고, 부양의무제 폐지도 말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은 장애등급제 폐지 입장은 내놓았으나, 부양의무제 폐지는 말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먹고, 입고, 화장실 가고, 이동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 전반에서 다른 사람의 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은 현재 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지거나 “형기 없는 감옥”이라고 부르는 시설에 내던져진다.

장애인의 실질적인 자립생활을 보장하려면,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제한 없는 활동보조를 제공해야 한다. 본인부담금을 폐지하고 활동보조를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 중증장애인의 삶을 개별 가정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 또한 활동보조인의 보건복지부 직접 고용, 생활임금 보장, 노동자성 인정, 산재 인정 등을 요구하는 투쟁도 함께해야 한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요구한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24시간 활동보조 확대를 위한 싸움에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