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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야신 암살

이스라엘의 야신 암살

무자비한 “국가 테러”

지난 3월 22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저항 조직 하마스의 창설자이자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을 살해했다. 이에 항의하는 팔레스타인인 20여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 여섯 명 중 한 명꼴이었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이 “지옥의 문을 열었다”며 보복을 맹세했을 뿐 아니라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도 보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총리 아흐메드 쿠레이도 “야신이 온건파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하마스를 통제하고 있었던 사람이 바로 야신이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매우 위험하고 비겁한 짓”이라고 이스라엘을 비난했다.

잘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휠체어에 앉아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노인을 살해한 이스라엘을 세계 각국도 비난했다. 물론, 이번 암살에 사용된 아파치 헬기와 헬파이어 미사일을 이스라엘에 제공한 미국만은 예외였다.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스라엘을 비난하기를 거부하고, “하마스는 테러 조직이며, 셰이크 야신은 테러 음모에 연루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야신 암살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지난해 9월 6일 야신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그 뒤로도 야신은 꾸준히 가자 시 거리에 모습을 나타내는 등 일상 생활을 지속했다.

표적 암살

그렇다면 샤론이 지금에 와서야 야신을 암살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샤론은 집권 연정 내의 훨씬 더 우익적인 정당들뿐 아니라 자신의 정당인 리쿠드당 내부에서도 제기되는 비판을 잠재우고 싶었다.

지난 2월 2일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대부분을 일방적으로 철수하겠다고 밝힌 뒤 당 안팎에서 비난에 부딪힌 샤론은 하마스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공격의 예봉을 누그러뜨리려 한 것이다. 또, 이를 이용해 자신과 아들의 부패 혐의에 대한 검찰 조사도 피하고 싶었다.

둘째, 샤론은 당연히 뒤따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보복을 이용해 4월 중순으로 예정된 미국 방문에서 뭔가를 얻어내고 싶어한다.

지난해 미국이 주창한 중동 평화안, 이른바 “로드맵“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점령지에서 철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샤론은 유대인 정착촌이 그리 많지 않은 가자지구에서 철수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에서 영토 병합과 팔레스타인인 격리를 지속할 작정이었다.

어쨌든 샤론은 조지 W 부시와의 정상회담에서 가자지구 철수의 대가를 얻어내고 싶었다.

전에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저항 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표적 암살을 감행해 자살 폭탄 공격을 촉발하고, 이에 따른 이스라엘인들의 희생을 이용해 외교적 이득을 얻은 바 있었다. 그래서 샤론 반대 시위를 벌인 한 이스라엘인은 “샤론은 우리의 생명을 가지고 도박하지 말라!”고 외쳤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의 군사 전문 기자 알루프 벤은 이렇게 썼다. “샤론이 원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지도부를 교체하고 테러를 멈출 때까지 예루살렘[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외교 협상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선언하는 것이다.”

“총리[샤론]는 요르단강 서안의 주요 정착촌들을 장차 이스라엘에 통합하는 것을 미국이 승인하겠다는 약속도 원하고 있다.”

샤론은 또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핑계삼아 팔레스타인 점령과 탄압을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우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1982년 팔레스타인 난민촌 사브라와 샤틸라의 2천여 명 학살 사건에 책임이 있는 “전범(戰犯)” 샤론이 이끄는 이스라엘이야말로 “표적 암살”을 멈추지 않는 진정한 “테러 국가”다.

2000년 9월 제2차 인티파다(민중봉기) 이래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사” 160여 명을 암살했고, 평범한 팔레스타인인 3천 명을 살해했다. 그 과정에서 부상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의 3만 9천 명이나 된다.

휴지 조각

이런 끔찍한 폭력과 억압, 끝없는 빈곤과 암담한 미래에 분노하면서도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해 좌절하고 절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야신과 하마스는 바로 그런 평범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성장했다.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침공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튀니지로 축출했다. 이듬해 야신은 지하조직 결성과 무기 소지 혐의로 이스라엘에 체포, 투옥됐다가 2년 뒤에 풀려났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이스라엘은 야신의 이슬람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아라파트 같은 PLO의 세속적 민족주의자들에 맞서는 대항 세력으로 이슬람주의 운동이 유용하다고 여긴 것이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가 시작되고 세속적 민족주의 세력의 부패와 무능이 드러나자 야신이 창설한 하마스에 기대를 거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늘어났다.

1989년 이스라엘은 야신을 체포해 종신형을 선고했다.(1997년 야신은 이스라엘 비밀경찰 모사드 요원 두 명―요르단 암만에서 팔레스타인 지도자 암살을 시도했다가 붙잡힌―과 교환 조건으로 석방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맞서는 저항 세력으로서 하마스의 명성은 더 높아졌다. 아라파트 같은 기존 저항 운동 지도부는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이스라엘에 많은 양보를 함으로써 그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대다수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의 이슬람주의 국가 건설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마스가 운영하는 각종 복지 사업과 무슬림 자선 단체들은 이스라엘의 가혹한 점령 아래서 엄청난 실업과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버팀목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많았다.

샤론은 이미 아라파트와 협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라파트가 “평화의 파트너“로서 “부적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하마스 지도자마저 암살했다.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평화”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철저히 분쇄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야신 암살은 중동 평화의 진정한 걸림돌이 이스라엘이라는 사실과 지난해 이라크 전쟁 “종전” 직후 미국이 발표한 “로드맵“이 한낱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이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