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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반대 시위 재판:
“제가 아니라 FTA와 1퍼센트 옹호자들이 유죄입니다”

노영민 씨는 지난해 12월 3일 열린 한미FTA 비준 무효 집회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검찰 기소를 당해, 11월 8일 재판을 받았다. 노영민 씨는 최후 진술에서 1퍼센트 부자와 재벌의 이익을 위해 99퍼센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팔아 먹는 한미FTA에 맞선 투쟁은 완전히 정당하며 따라서 무죄임을 주장했다. 아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지지를 바란다.

1퍼센트 부자와 재벌의 이익을 위한 한미FTA에 맞서 저항한 모든 사람들과 저는 무죄입니다.

2011년 11월 22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한미FTA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고소영이니 강부자 정권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1퍼센트 부자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던 이명박 정부와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본색을 똑똑히 보여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집권 이후 한미FTA 날치기까지 다섯 번의 날치기 기록을 세웠습니다. 한나라당은 기습적인 날치기를 넘어 최초로 본회의 비공개를 결정, 영상 중계나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기로 작심을 했습니다. 이러한 폭거에 대해 당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은 “만약 폭탄이 있었으면 이 썩은 국회를 날려버리고 싶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한나라당의 날치기는 민주노동당이 국회방청석 유리를 깨는 덕분에 기자들의 촬영이 가능했고 모든 국민에게 그 현장이 전해져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 촛불을 들고 쏟아져 나왔습니다.

날치기 직후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촛불은 계속 더 뜨거워지고 커졌습니다.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평범한 사람들에게 켜켜이 쌓여 온 분노와 불만이 한미FTA 날치기를 계기로 폭발했습니다.

“썩은 국회를 날려버리고 싶다”

경찰은 촛불을 막기 위해 물대포를 마구 퍼부었지만 이는 오히려 불씨에 부채질을 했습니다. 온 몸으로 물대포를 맞으면서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게 했습니다. 작년 11월 26일 열린 한미FTA 무효화 범국민 촛불문화제에는 ‘제2의 촛불’을 우려한 경찰의 이중삼중의 원천봉쇄를 뚫고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화문 사거리에 모였습니다. 작년 11월 30일 열린 ‘나는 꼼수다’ 한미FTA 반대 콘서트에는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매일 열리는 촛불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목이 터져라 ‘비준무효 명박퇴진’을 외쳤습니다. 대학생과 노동자들,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넥타이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청년들, 교복 입은 학생들이 대거 참가해 1퍼센트만을 위한 정권인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고 한미FTA가 가져올 재앙을 막기 위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거리에서 촛불을 높이 든 시민들과 함께 각계각층에서 한미FTA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사법부의 법관들까지 나섰습니다. 당시 김하늘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자신이 합리적 보수주의자라고 밝히면서도 “나는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하여, 그것이 여러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는 불평등 조약일 가능성이 있고, 특히 사법부의 재판관할권을 빼앗는 점에서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며, 이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아 이 조약을 포함한 법률의 최종적인 해석권한을 가지고 있는 우리 법원에서 이제라도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후 법관 1백66명이 ‘대법원장님께 드리는 건의문’에서 “한미FTA 중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ISD 조항이 우리나라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조약이라는 주장에 주목하게 되었다”며 ISD 조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바 있습니다.

최근 한국전력은 전기요금 인상안이 정부에 의해 거부되자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를 악용해 정부의 공공요금 억제 정책을 무력화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외국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내 기업까지도 정부의 공공정책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김하늘 판사를 비롯한 법관들의 지적이 완전히 옳았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대포

검찰이 저를 기소한 근거로 적시한 작년 12월 3일 민중대회와 범국민촛불대회는 이러한 배경 에서 치러졌습니다. 저는 한미FTA가 99퍼센트에게 가져올 재앙을 막기 위해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날 경찰의 원천봉쇄와 집회 참가자 연행에도 불구하고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날 범국민대회에는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통합연대 공동대표,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등 야당 대표들과 많은 국회의원들도 참가했고 바로 이들이 선두에 서서 보신각 쪽으로의 이동을 막는 경찰을 밀고 보신각 앞까지 행진을 벌이면서 범국민대회의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이날 대회에 나온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를 하면 하루 이틀 가다 말겠지, 대통령이 서명을 하면 하루 이틀 떠들다가 말겠지, 이렇게 생각한 거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국민에게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한미FTA 무효화 하겠다’는 그때까지 국민의 무효화 목소리는 결코 쉬지 않을 것이다. 무효화까지 힘차게 나아가자. 우리의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이 저를 처벌하기 위해 근거로 한 바로 그 집회에서 제1 야당의 대표가 앞장서서 경찰을 밀어내고 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방해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선동했습니다.

만약 그날 집회 참여를 이유로 저를 처벌한다면 그 자리에 참가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야당 대표들, 국회의원들을 모두 처벌하겠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경찰과 검찰, 법원이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날치기에 분노하고 한미FTA 무효를 위해 거리에서 촛불을 높이 들고 저항한 사람들의 행동은 완전히 정당합니다. 상습적으로 날치기를 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퍼부어 대고 촛불을 든 평범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소환장을 남발하고 기소하는 자들이야말로 1퍼센트 재벌과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범죄자들입니다.

정부와 재벌들은 한미FTA 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된 후 온갖 장밋빛 전망과 미사여구를 늘어놓았습니다. 실제로 올해 들어 한미FTA를 활용한 덕에 수출이 늘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미FTA를 결코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도대체 그것이 99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까? 긍정적인 효과는커녕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벼랑 끝

비정규직 노동자는 계속 늘어 1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전제 노동자의 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것입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경제 위기를 빌미로 한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의 위험에 항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재벌들의 곳간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일례로 노동소득분배율은 60퍼센트 아래로 떨어져 소득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정부는 0~2세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을 시행한 지 1년도 안 돼 폐기하겠다고 합니다. 얼마 전 중증장애인인 故 김주영 씨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지 불과 몇 시간 후에 불이 나 사망했습니다. 그가 쓰러져 있던 자리와 현관까지는 고작 다섯 발자국 거리였습니다. 하루 24시간 활동보조를 받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끔찍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며칠 전 장애를 가졌지만 다정했던 오누이가 화재로 인해 의식을 잃었다가 누이가 결국 죽었습니다. 장애아동 돌봄서비스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대한문 앞에서는 한 노동자가 한 달이 다 되도록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23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희생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우 지부장이 24번째 죽음을 막기 위해 곡기를 끊은 것입니다. 또한 울산에서는 지난 10일 17일부터 두 명의 노동자가 15만 볼트가 넘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위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불법파견이니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조차 깡그리 무시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외침을 외면하는 현대차 자본에 맞서 최병승, 천의봉 두 노동자가 철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입니다. 99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나라는 이런 나라가 결코 아닙니다. 정리해고로 인해 목숨을 잃지 않는 나라, 정규직이 되기 위해 철탑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 돈 걱정 없이 교육받고 병원에 갈 수 있는 나라, 장애인도 불편함 없이 비장애인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99퍼센트가 원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한미FTA는 이 모든 것을 가로막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괴물일 뿐입니다.

얼마 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한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외국은 악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며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권력자들이) 국민을 나락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악법에) 저항하는 깨어 있는 국민이 있어야 진정한 민주국가”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민주주의가 갈수록 후퇴하고, 99퍼센트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정리해고로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99퍼센트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한미FTA를 포함해 이 사회 온갖 불의에 맞선 저항과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완전히 정당합니다. 따라서 1퍼센트 부자와 재벌의 이익만을 위한 한미FTA에 맞서 저항한 모든 사람들과 저는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