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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가면 벗고 1% 본색 드러내는 박근혜

“지금은 경제 성장 지속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규제보다는 경제 활력을 고취해야 한다, 개별 기업 노사 문제 관여는 최소화해야 한다, 증세는 신중해야 한다.”

11월 8일 박근혜를 만난 전경련, 경총 등 경제5단체 회장들이 던진 말들이다.

박근혜는 요즘 이런 자신의 핵심 계급 기반의 요구에 따라 노골적으로 우향우하고 있다.

11월 15일 박근혜 건국대 방문 항의 행동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건국대 학생 들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폭력 행사로 찢어진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미진

‘먹튀 아니냐’는 비판까지 들으면서 사실상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 가면을 벗어던졌고 김종인을 토사구팽하고 있다. 조중동과 경찰도 이런 박근혜의 우향우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경찰은 새누리당사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던 쌍용차 노동자들을 끌어내 연행했고, 조중동은 서울광장 앞 대한문 농성촌을 철거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허울뿐인 ‘국민대통합’ 가면을 벗고서 ‘1퍼센트 보수 대통합’을 향하는 것이다. 이런 우향우에는 주류 지배자들의 커져 가는 위기감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아 세계경제 위기 확산 국면에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대유럽 수출은 16퍼센트나 줄었다.

집권 우파의 정치 위기도 심각하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감은 높고, 최근 검찰과 경찰의 우스꽝스러운 아귀다툼에서 보듯 레임덕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내곡동 특검은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를 재테크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는 비판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었고, 당장 구속 수사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이명박은 내곡동 특검을 방해하고 수사 연장을 거부했지만, ‘법과 원칙’ 운운하던 박근혜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최근 〈한겨레〉 조사에서도 60퍼센트가 ‘새누리당의 재집권’보다 ‘정권 교체’가 낫다고 답했다.

게다가 박근혜의 중도층 확보 노력도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박근혜는 집토끼 묶는 것에 치중하며 투표율 떨어뜨리기로 가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약점을 이용해 선거판을 지저분하게 만들며 반우파 정서가 투표로 연결되지 않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요새 새누리당 공식 논평은 하루 열 건 가까이가 야당 후보 비리 의혹을 재탕삼탕하며 꺼내 놓는 것인데, 대변인을 일곱이나 둔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화살 1백 발을 쏴서 하나만 맞으면 된다’(새누리당 관계자)는 식이다.

지저분하게

이처럼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박근혜의 정치적 궤적을 돌아보면, 그가 늘 권력을 위해선 말바꾸기를 서슴지 않는 전형적 부패 우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근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되기 힘들어 보이자 탈당했는데, 이때도 본색을 숨기고 김정일을 만나고 오는 등 ‘시류 영합 쇼’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떨어지자 한국미래연합 창당 비용 2억 원을 한나라당한테 받고 복당했다. 사실 이 돈이 바로 훗날 문제가 된 “차떼기 대선자금”에서 나온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2004년 바로 그 차떼기 수사와 노무현 탄핵으로 한나라당이 궁지에 몰리자, 박근혜는 시치미 뚝 떼고 깨끗한 척하며 당권을 차지했다. 그때 차떼기 수사로 유명해진 검사 안대희는 유독 박근혜 의혹은 수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박근혜 캠프에 발탁됐다.

박근혜는 2004년 가을에 이른바 4대 개혁 입법(국가보안법·사립학교법·과거사규명법·언론관계법 개정)에 반대하는 자칭 “국가정체성 수호” 투쟁에 ‘올인’했다.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한나라당 최연희가 “[국가보안법 문제는]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하자,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하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에서 위세 떨친 공안검사 출신에게 ‘국가관’을 따져 물을 정도니 박근혜의 국가관이 얼마나 우파적인지 알 만하다.

이 투쟁을 놓고 당내 논란이 일었는데, 박근혜는 자서전에서 당시 의원총회를 이렇게 회상했다. “가장 민주적 방법으로 투표를 통해서 대표인 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해 주었다.” 이것이 지금껏 10년째 ‘정당 개혁’과 ‘정치 쇄신’을 내세우는 박근혜의 ‘민주주의관’이다.

노무현 정부의 배신과 실패가 낳은 환멸 때문에 우파 집권이 확실해 보인 2007년 대선 때는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를 내세우며 우파들한테 아부하느라 정신 없었다.

뉴라이트 회합에 가서는 “제가 꿈꾸는 사회도 바로 뉴라이트가 꿈꾸는 사회와 같다. 법치주의가 확립되고, 공권력이 바로 서야 한다”고 했고, 자본가들에게는 “불법파업과 집단 이기주의”를 뿌리 뽑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는 대통령 후보 자리를 이명박에게 빼앗긴 후 이를 갈긴 했지만, 정작 이명박의 친기업·반민주·반노동 정책과 대립한 적이 없다. 4대강, 부자 감세에 적극 찬성했고, 쇠고기 협상 결과, 쌍용차와 용산 사태에도 침묵했다.

이러던 박근혜가 무상급식 등 진보 의제가 사회적으로 우위에 서자 “내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라는 궤변을 내뱉으며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온 것이다.

박근혜의 본색과 지향은 어떻게든 집권해서 1퍼센트 기득권을 옹호하며 국가의 힘으로 반동의 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런 박근혜가 개혁을 바라는 젊은 층에게 매력을 주지 못해서 중도 확장에 실패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박근혜 세력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결집해 있는 우파 지지자들만 잘 유지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문재인·안철수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은 진보진영에게 투쟁과 대안 건설의 과제를 던져 준다.

곳곳에서 투쟁하며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이를 위한 좋은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