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의 피가 튀고, 눈물과 오열이 스크린 밖으로 배어 나온다. 영화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싸웠는지, 요구가 무엇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그저 속절없이 죽어 갔다. 그것은 사건이라기보다 불현듯 나타난 재앙 같았다. 1980년 5월의 일이다.

그렇게 5월은 지났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에게는 숨쉬는 한순간 한순간이 고문과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픔은 그 5월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렇게 되굴러 오늘에 이른다. 영화 〈26년〉은 5월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는 그들이, 학살의 주범인 ‘그’를 향해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강풀의 웹툰 〈26년〉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투자자들이 모조리 등을 돌렸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길 원치 않는 이들의 압력에 의해 이 영화는 그렇게 사장될 뻔했다. 

하지만 그런 압력 반대편에는, 또한 이 이야기가 빛을 보길 바라는 염원도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모인 수많은 양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영화관으로 향하는 내 마음이 이미 기분 좋게 들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진 영화가 너무 엉성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흠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 영화 안에는 거대한 분노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슬픔이 있다. 그리고 영화만으로 다 이야기하지 못한, 우리 시대의 답답함이 스크린 바깥 어디 한구석에 있다. 

29만 원

‘잔고 29만 원’으로 온갖 호사스러운 생활을 해 온 ‘그’. 수많은 사람을 학살해 놓고, 그들을 폭도로 몰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급급했던 ‘그’. 수많은 이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그 분노의 댓가조차 치르지 않고 있는 ‘그’. 

남은 자들은 아팠고, 그래서 분노했다. 그리고 스크린 안의 배우들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옮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이것이다. 슬픔과 분노와 같은 순수한 감정들을 그 형태 그대로 고스란히 전하려 했다는 것. 이 불합리한 현실이 주는 비통함에 공감하는 관객이라면 누구나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동안 “광주의 아들들”이 된다.

나는 많은 이들이 이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 그래서 이 상처 입은 5명의 지친 몸을 그만 쉬게 하고, 우리가 그 바통을 이어 받았으면 한다. 

군사독재의 끔찍함이 아직까지 유산으로 남아 있음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의 그는 현실에서도 아직까지 군 장교들의 사열을 받고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 군사독재를 계승한 세력은 여전히 박근혜를 내세워 권력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피눈물이 마르지 않은 광주 땅은 아직 이유를 묻고 있다. 우리가 왜 죽어야 했는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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