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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팔루자 학살 목격담

이라크 팔루자 학살 목격담

미군의 잔혹한 공격이 저항을 불렀다

최근의 언론 보도는 5백∼6백 명이 팔루자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 중 2백 명이 여성이고, 1백 명 이상이 어린이이다. 무자헤딘(저항 투사) 중에는 여성이 없다. 따라서 죽은 여성들은 전부 비전투원이라는 말이다. 또한 부상당한 성인 남성 중 많은 사람들은 출근하는 길이었다고 증언했다.

팔루자 공격이 시작되면서 발전소가 폭격당했다. 그 동안 여러 대의 소규모 발전기가 전력을 생산했고, 중요한 기능을 하는 곳에 주로 공급됐다. 팔루자에는 현재 4개 병원이 개원해 있다. 우리가 방문한 병원은 단지 작은 응급실에 불과했다. 또 다른 병원 중 하나는 자동차 정비소를 장소로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병원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팔루자 토박이인 마키 알-나잘로부터 대부분의 정보를 얻었다. 그는 인도주의 단체인 〈인터소스〉에 소속돼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병원의 운영자로도 일했다. 모든 의사들이 바빴고, 그들은 별다른 지원 없이 초를 다투며 일하고 있었다.

친절하고, 점잖은 사람인 알-나잘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다. 알-나잘은 미국의 만행에 화가 난 나머지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이제 그의 완전한 이름을 적어도 괜찮은지 물어 보니까, 그는 “괜찮습니다. 이제 괜찮습니다. 그 자식들, 자기네 맘대로 해보라지.”

“휴전” 이후 대규모 폭격은 드물었다. 미국은 주되게 약간의 포격과 무차별 저격을 섞어서 공격했다. 알-나잘은 저격수의 총격을 맞은 응급차들과 여성과 아이들 얘기를 해줬다. 팔루자 포위가 가져온 공포를 묘사한 다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47년 동안 바보였습니다. 그 동안 저는 유럽과 미국 문명을 신봉해 왔습니다.”

나는 팔루자에 오기 전에 응급차에 대한 공격 얘기를 들었지만,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러나 직접 내 두 눈으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운전사 쪽 앞 유리에는 두 개의 구멍이 비스듬히 아래쪽을 향해 깨끗하게 뚫려 있었다. 명중했다면 운전사의 가슴에 맞았을 것이다. 또 다른 응급차에는 앞 유리에 구멍 하나가 뚫려 있었다.

이것은 응급차 운전사를 노리고 사격했음을 보여 준다.

응급차들은 적색과 청색이나 초록색 등을 켜고, 경적 소리를 내면서 운행한다. 특히 정전 때문에 암흑으로 뒤덮인 도시에서 응급차가 다른 차량과 혼동될 여지는 없었다.

우리는 이 작은 병원에 네 시간 동안 머물면서 최소한 열 명 이상의 부상자들이 실려오는 것을 목격했다. 부상자 중에는 18살 먹은 젊은 여성 한 명이 있었다. 그녀는 머리에 총을 맞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대 그녀는 입에 거품을 문 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의사들은 그녀가 밤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다른 심각한 사례로 대량의 내출혈을 겪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또한 나는 상반신에 화상을 입고, 허벅지에 상처를 입은 남자를 보았다. 집속탄에 입은 상처인 듯했다. 친척들이 통곡하면서 “알라후 아크바(“신은 위대하다”)”를 외치고, 미국에 분노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부시 정부의 억지 가운데 더욱 웃긴 것은 무자헤딘을 팔루자 주민들 대부분으로부터 고립된 소규모의 “극단주의자들”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무자헤딘은 지역사회 출신이고 지역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무자헤딘들은 많은 부상당한 사람들을 병원으로 데려왔고, 의사와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들 중 한 명은 이라크 경찰의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이라크 경찰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 무자헤딘은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당시 돌 던지던 사람들과 같은 부류였다. 우리가 바그다드로 호송한 부상자들 중 나는 알리라는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무자헤딘에 대해 묻자, 그는 자신이 무자헤딘이 아니라고 말했고,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알-나잘은 나에게 침략 당시 팔루자 사람들은 싸우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후세인이 싸우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미군은 팔루자를 점령하기 위해 특별히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만약 후세인이 일하라고 말하면, 우리는 사흘간 일을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우리를 후세인 지지자로 비추고 싶어합니다. 후세인이 잡혔을 때, 미국은 저항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항이 더욱 증가했는데도 그들은 우리를 여전히 후세인 지지자라고 부릅니다.”

만약 미국이 그처럼 잔학하지만 않았어도 팔루자 사람들의 선의를 얻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완전 뚜껑이 열렸다. 팔루자를 초토화하더라도 무자헤딘으로부터 “구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라울 마하잔 글을 더 보고 싶으면 www.empirenotes.org를 방문하시오.)

저항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다

점령군이 저항에 직면한 곳은 수니파 무슬림 도시인 팔루자만이 아니었다. 4월 초에 시아파 무슬림 성직자 무크타다 사드르의 지지자들은 점령군에 공격을 개시했다. 부시 일당은 저항하는 사람이 극소수인 것처럼 꾸미고 싶어했다.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싸우는 사람들이 “건달들, 깡패들과 테러리스트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정보 당국은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반란자들’이 “사드르와 그의 민병대보다 훨씬 광범하고, 많은 시아파가 점령에 반대하기 시작했다”고 인정했다. 이라크 연합군정청이 설립한 씽크탱크의 소장인 가싼 알­아티야도 “거리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반미주의가 보편적이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억압 때문에 싸우고 있다. 움 사미르는 팔루자에서 37년 동안 산 62세 여성이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무자헤딘[저항 세력]은 우리 아들이다. 나는 무자헤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의 친척 중 한 명인 움 달리아는 “우리 아들은 두 살 먹었다. 그는 미군을 볼 때마다 침을 뱉는다. 나는 그러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미국 지배자들은 도심 시가전에 관한 기분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브레넌 번 대령은 “이건 마치 베트남의 위에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위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었던 ‘구정 공세’의 중심이었던 도시이다.

“우리는 미국이 우리에게 싸움을 걸기까지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는 그들이 후세인을 제거하고 바로 떠날 거라 믿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다. 그러나 그들은 진면목을 바로 드러냈다. 그들은 우리 친척, 친구와 형제 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 바그다드 서쪽 하바니야의 투사인 모하메드

미군 지휘관에 맞선 이라크군의 반란

미군은 새로 설립된 이라크군 중 한 대대가 미군 지휘관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고, 팔루자를 점령하기 위해 파견된 미 해병대와 함께 싸우기를 거부했다고 인정했다. 이 사건은 미국 점령자들이 직면한 위기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미국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라크 보안군을 감독하는 미 육군 소장 폴 이튼은 ‘월요일에 6백20명으로 구성된 이라크 육군 2대대가 수니파 거점인 팔루자로 이동하던 중, 바그다드의 시아파 무슬림 지구에서 그 중 한 명이 총격을 당해 사망하자 싸우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선발대는 방향을 돌려 바그다드 북부에 위치한 타지에 있는 옛 공화국수비대 기지로 돌아왔다.

“이튼은 대대 구성원들이 대화 중에 ‘우리는 이라크인들과 싸우기 위해 입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이 대대가 미국 관료들이 원하는 대로 복종하지 않은 것은 점령자들에게 엄청난 문제다. 미국 전략의 핵심은 미군의 존재를 감추고, 치안 기능을 이라크인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지난 두 주 동안 이라크 보안군이 일부 지역에서 붕괴하면서 이 전략은 커다란 후퇴를 겪었다.

“미 육군 고위 관료 하나는 ‘최근 며칠 동안 이라크 육군·민방위군·경찰과 기타 보안군 중 아마도 20∼25퍼센트가 사직하거나, 편을 바꾸거나, 혹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점령에 반대해 단결하다

“우리는 부시와 영국의 악마 블레어가 우리 나라에서 나가기를 바란다”

각개격파는 영국 제국의 오랜 좌우명이었다. 20세기에 영국이 이라크를 점령해서 이라크의 수니파와 시아파를 서로 대립시켰을 때 이 방법은 잘 먹혀들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 방식을 계속 써먹었다. 그리고 작년 한 해 동안에도 미국 점령자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를 경쟁시켜서 자신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 했다.

미국은 분열을 조장하고는, 자기가 없으면 수니파와 시아파가 내전을 벌일 것이기 때문에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정당화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보여 준 잔인함 때문에 수니파와 시아파가 점령에 저항해 단결하면서 이러한 분열이 도전받고 있다. 2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바그다드에서 가장 커다란 수니파 사원에서 열린 점령 반대 대규모 기도회를 가득 채웠다. 참석자 중 많은 이들은 시아파였다.

하리쓰 알-다리가 이 기도회에서 연설했다. 그는 단결한 사람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그 동맹인 영국의 악마 토니 블레어가 공격을 시작한 지 일년이 지났습니다. 일년이 지났건만, 그들이 약속한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민주주의 대신에 우리에게는 공포와 검열과 피의 강이 있을 따름입니다. 미국은 자신이 종파간 충돌을 방지해 주는 안전밸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점령을 계속하기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모든 종파들이 단결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이 사원과 이 집회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합군이 이 나라에서 떠나가기를 바랍니다.”

그 전 날 수천 명의 수니파와 시아파 사람들이 미군에게 포위된 수니파 도시인 팔루자에 음식과 의료품을 전달하기 위해서 함께 미군 검문소까지 행진했다. 한 AFP(아에프페) 통신 기자는 이 행진을 이렇게 묘사했다. “장갑차의 미군들은 팔루자 시로 향하는 차량과 보행자 들을 멈추려 했다. 그러나 미군들은 바그다드 서쪽 지역 거주자들이 지원 나와 자신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지자 위축됐다. 행진하던 사람들은 ‘우리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형제들이다. 우리는 우리 나라를 절대로 팔아넘기지 않을 것이다’고 소리쳤다.”

행진 조직자 중 한 명인 아마드 압델 가푸르 알­사마라이는 아에프페 통신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그다드 사람들은 음식과 의료품을 실은 90대의 차량을 팔루자의 가족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전폭기와 탱크에 의해 폭격당하고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 연대를 보냅니다. 시위·모금과 전투, 이 모두가 지하드[성전(聖戰)]입니다. 점령된 나라의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점령에 맞서 싸울 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