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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혁명가와 2012 대선 ― ‘노건투’의 비판에 답하며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가 12월 12일 발표한 글에서 노동자연대다함께 운영위원회가 발표한 대선 투표 관련 성명을 비판했다. 최이선 동지는 이렇게 말한다.

“말로는 혁명적 정치를 떠벌리지만 행동으로는 문재인 지지를 호소하는 ‘다함께’ 류의 꽁무니주의자들과도 맞서자. 맑스와 레닌의 글의 조야한 짜깁기로 포장된 다함께 류의 개량주의 정신보다, 가장 소박한 노동자의 감수성으로 독립적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는 노동자의 계급적 직관이 지금 한국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위해 백 배, 천 배 소중한 자산이다.”

전술

노건투는 노동자연대다함께를 마치 “문재인 지지” 그룹처럼 둔갑시켰지만, 이것은 완전한 왜곡이다.

이것은 20세기 초에 레닌이 영국공산당에게 ‘공산당이 출마하지 않은 선거구에서는 노동당에게 투표하라’고 했다 해서, 레닌을 영국노동당 지지자라고 해석하는 것이 왜곡인 것과 마찬가지다.

노동자연대다함께 운영위원회가 발표한 성명에서도, “박근혜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재인에게 투표하는 심정에 공감한다. 하지만 아무런 환상도 없어야 한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노동자연대다함께의 실천을 보면, ‘민주당 지지자’라는 식의 비판이 터무니없음을 알 수 있다.

노동자연대다함께는 김대중·노무현 민주당 정부 10년 동안 이 정부의 시장주의적 정책과 친제국주의적 정책에 맞서 일관되게 싸웠다. 이 때문에 노동자연대다함께의 많은 활동가들이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 탄압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우리는 민주당의 한계를 들춰내고 비판하며,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투쟁해 왔다.

더구나 노동자연대다함께가 지지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것은 문재인이 아니라, 투표에서라도 우파와 자본가 들의 대표자인 박근혜를 패퇴시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이다.

전략·전술의 대가인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혁명가들의 경험과 주장에서 교훈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레닌은 《좌파 공산주의 ― 유아적 혼란》에서 “어떤 정치 행동을 취하기 전에 계급 세력들과 그 상호관계에 대해 엄밀하게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술은 구체적 정세와 세력관계 속에서 계급투쟁의 전진을 위해(혹은 후퇴를 막기 위해) 제시하는 것이므로, 이런 분석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노건투의 글에는 이런 분석과 평가가 없다. 그저 “지배 계급의 양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저마다 자신들이 문제 해결의 적임자임을 주장하지만, 대중이 보기에 양쪽 다 거기서 거기다” 하는 한 문장뿐이다.

물론,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이나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주장은 추상적 선전의 영역에선 올바르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할 것이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데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투표 전술을 말할 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세력 뒤에 어떤 집단과 인물들이 포진해 있고, 구체적 역사 과정 속에 형성된 이런 차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두 세력에게 느끼는 정서에 어떤 공통점과 차별점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상”만 남을 뿐이다.

꽁무니주의?

우리가 계급의 후진 부위의 잘못된 의식과 정서에 타협하는 “꽁무니주의”라는 노건투의 비판도 타당성이 없다.

노건투는 김소연, 김순자 후보를 지지하는 노동자들만이 계급의 선진 부위인 것처럼 가정한다.

그러나 11월 9일 “전교조도 20년 동안 못한 역사적인 파업”을 벌인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정희 후보를 지지하거나 문재인에게 기대를 걸고 있기에, 계급의 꽁무니인가?

정몽구 일당에 맞서 적극적인 투쟁을 벌이면서 박근혜가 당선하는 것만은 막아 보겠다고, 어쩔 수 없이 문재인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다는 현대차 비정규직·정규직 투사들은 계급의 꽁무니인가?

노건투 스스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조차 자본가 정당에 기대거나 의존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11월 27일)고 했는데, 그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계급의 꽁무니인가?

박근혜만은 안 된다는 심정에서 문재인에게 투표하려는 수많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그저 후진적 부위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문제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이런 노동계급 대중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하는 점이다.

레닌은 《좌파 공산주의 ― 유아적 혼란》에서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며 계급 대중과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좌파 공산주의자”들을 따끔하게 비판했다.

“당신은 대중 수준으로, 계급의 후진층 수준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당신은 그들에게 쓰디쓴 진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 당신은 그들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의회주의적 편견을 편견이라고 불러야만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당신은 (계급의 공산주의적 전위뿐만 아니라) 바로 계급 전체의, 그리고 (대중의 선진적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바로 모든 근로인민 대중의 의식과 준비 정도의 실제 상태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펴야만 한다.”(강조는 원문)

왜 그런가? 이유는 명백하다.

“노동계급 다수의 견해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대중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레닌)

이런 따끔하고 날카로운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단지 “맑스와 레닌의 조야한 짜깁기”라고 무시하는 것은 진지한 태도로 보이지 않는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끊임없이 광범한 계급과 연관을 맺으려고 노력하고, 그 속에서 진실을 말하며, 소통과 연관을 강화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비록 영향력이 작은 조직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려면, 즉 혁명적 사회주의와 계급 대중이 만나려면, 전략·전술이 중요하다. 따라서 박근혜를 패퇴시키고자 하는 노동계급의 열망을 공유하는 전술(불가피한 타협이지만)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밝혀 두자면, 이런 정치 전술 문제에선 기꺼이 동지적 관점에서 논쟁과 비판을 마다하지 않지만, 작업장 투쟁에서는 노건투의 전투적 활동가들과 협력하며 함께 싸울 수 있기를 바란다. 진정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은 투표장이 아니라 거리와 작업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