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분석을 잘 보여 주는 한 가지 예는 자본주의 전에 존재했던 봉건제 사회다. 우선 봉건제는 이른바 “암흑기”에서 발전을 촉진했다.

로마제국이 붕괴한 뒤, 한때 로마제국에 의존했던 영토들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재조직돼야 했다. 이 영토들은 더는 전리품이나 노예 노동의 지속적 유입에 기대 성장할 수 없었다.

서기 1천 년대에 들어서며 새로운 모델이 생겨났다. 평범한 사람들은 농노로 땅 한 뙈기에 묶인 채 거기서 농사를 지어야 했다. 농노들은 자신을 지배하고 세금을 가혹하게 탈취해 가는 영주에게 묶여 있기도 했다.

서기 1천 년에서 1천3백 년 사이 봉건제 사회가 만들어지며 유럽의 인구가 폭증했다. 1086년 1백만 명이었던 영국 인구는 1386년에는 7백만 명이 됐다.

그러나 결국 봉건제 사회는 바로 이 성공으로 인해 몰락하게 된다. 농노 경제는 불어난 인구와 그 인구를 중심으로 생겨난 도시의 수요를 더는 충족할 수 없었다. 분열해 다투던 지배계급 영주들에게 대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자 1300년대부터는 유럽 전역이 침체를 겪게 됐다. 인구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자작농과 상업 자본가 등 신생 생산력을 대변하던 계층은 봉건제적 생산관계라는 족쇄에 묶여 있었다. 기아와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흑사병의 창궐은 불안정성을 키웠다. 영주들은 농노를 더 심하게 수탈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유럽 전역에 농민들의 반란이 증가했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의 유럽에서는 상부구조에서 치열한 이데올로기 투쟁이 벌어졌다.

종교 개혁을 둘러싼 투쟁, 영국 내전 당시 수평파의 급진 사상, 계몽주의와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대변한 철학 등이 그 예다.

봉건제의 위기는 토대에서 시작했지만, 상부구조에서 벌어진 이런 이데올로기적 투쟁이 없었다면 봉건제의 몰락은 요원했을 것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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