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가 원래 지금처럼 낙후했던 것은 아니다. 북한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급속히 성장했다. 북한의 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10년 동안 연평균 25퍼센트씩 성장했고, 1965∼78년에는 약 14퍼센트씩 성장했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20년 동안 북한의 경제성장은 남한의 성장을 훨씬 능가했고, 남한이 도대체 경제성장을 시작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미국 관리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1986년까지 북한과 남한의 국민총생산을 같은 수준으로 추정했다.

북한의 공공의료 체계는 한때 세계보건기구나 다른 국제연합 기구들로부터 칭찬받는 수준이었다. 1980년대 북한 어린이들의 질병 예방접종 상태는 미국 어린이들보다도 훨씬 나았고, 1990년 북한의 평균수명은 70.7세로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동안 달라졌다. “북한에서 유아부터 5살 이하 어린이와 산모의 사망률이 지난 10년 동안 2배 증가”했고, 지금 “42퍼센트의 어린이가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원래는 항생제를 생산하던 나라가 이제는 항생제 하나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1995년과 1996년의 홍수가 북한 경제를 초토화시켰다고 믿는다. 그 당시 홍수가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서방 언론들은 그 때의 굶주림과 질병으로 1∼2백만 명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식량난 전에 이미 경제 위기가 있었다. 오히려 경제 위기가 엄청난 수해와 식량난의 원인이었다. 수해보다 농장에 많은 양의 비료를 공급하던 대규모 화학산업의 붕괴가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1995년 홍수 뒤 1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곡물 생산은 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국민을 먹여살리기 위해 해마다 2백만 톤 가량을 외국 원조와 국제 구호기관에 의존하고 있다.

1995년 홍수가 났을 때 이미 경제는 몇 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1993년 제21차 노동당 대회에서 북한 정부는 “경제 건설의 큰 손실”과 “복잡하고 첨예한 내외의 상황”을 공식 인정했다. 1990년대 북한 경제는 1999년 한 해를 빼고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1989~91년 옛 소련 블록의 붕괴가 북한에 큰 타격을 줬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믿는, 북한 경제 위기의 또 하나의 원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북한 경제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식 자립 경제가 이미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제2차 7개년계획(1978∼84년)부터 경제는 삐걱거렸다. 1970년대에 이미 북한은 자체 기술이나 소련의 신기술에 기반한 “광범한 산업 발전이 분명히 소진”(커밍스)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비와 신기술 도입을 위해 서방과 일본으로 돌아섰지만 이것은 북한에게 외채 상환의 어려움만 가져다 주었다.

성장률은 점점 떨어졌고 그에 따라 어려운 안팎의 조건에 대처할 힘이 없어졌다. 옛 소련 블록의 붕괴 및 홍수 피해와 함께 북미 관계가 북한의 목을 졸랐다. 소련이 몰락한 세계에서 미국은 새로운 “악마”가 필요했고 주저없이 북한을 악마로 만들었다.

오늘의 북한은 사회주의가 세계체제로부터 떨어져 한 나라에서 건설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사회주의는 세계 자본주의가 도달한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세계적 변혁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