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또다시 ‘깜깜이’ 인사로 인수위원장 김용준을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박근혜는 김용준을 지명하면서 “법과 질서를 바로세웠고 확고한 소신과 원칙에 앞장서 온 분”이라며 ‘법질서’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나 이명박의 비리 측근 특별사면 추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은 박근혜가 ‘법질서’ 운운하는 것은 역겹다. 박근혜가 당선하자 감옥 안에서 만세를 불렀을 한화 회장 김승연이 최근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것은 ‘법질서’의 위선을 드러낸다. 불법파견을 하고도 ‘배째라’로 일관하는 현대차 회장 정몽구만 봐도 ‘법질서’가 진짜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질서를 더 강화할 박근혜 시대 인수위 앞에서 고 최강서 열사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사진 제공 <노동과세계>

‘법질서’ 의제는 미국 레이건 정부나 영국 대처 정부 같은 강성 우파 정부가 즐겨 사용해 온  단골 메뉴다. 한국에서도 독재정권들이 ‘정의 사회’, ‘범죄와의 전쟁’ 등을 들먹이며 사회 분위기를 경색시키고 급진좌파들을 속죄양 삼아 탄압하곤 했다.

법관 시절에 “법과 질서를 바로세웠다”는 김용준도 전두환·노태우 처벌을 반대하며 ‘5·18 특별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냈고, 문익환 목사 등에 유죄를 선고하며 국가보안법을 옹호한 바 있다. 최근에는 “광우병 보도의 상당 부분이 허위였다”며 MBC 〈피디수첩〉 제작진 처벌을 요구하기도 했다. 

엄청난 부자기도 한 김용준은 아들 두 명 모두 군 면제자인데다, 이 아들들이 7~8살 때 수십억 원대 부동산을 취득한 것이 드러나 편법 증여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자가 ‘사회적 약자’의 대표인 양 했던 게 우스울 뿐이다.

박근혜가 임명하거나 선호하는 인물들만 봐도, 박근혜 정부가 나아가려는 방향을 알 수 있다. 야간 옥외집회 금지 합헌 의견과 ‘미네르바’ 처벌 합헌 의견을 낸 이동흡, “반(反)대한민국 세력” 운운한 극우 인사 윤창중,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미화한 뉴라이트 계열 박효종 등이 그들이다.

또, 박근혜는 서승환, 장순흥, 안상훈처럼 박정희 독재 때 고위직을 맡은 자들의 자식들을 인수위로 끌어모아 “유신 2세” 인수위를 구성했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명예 회복’을 꿈꾸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극우 막말 대변인 윤창중은 온갖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근혜의 신임을 얻고 있다. 반면 통일부 장관으로 예상되던 최대석은 ‘미스터리’한 과정을 거쳐 인수위에서 낙마했다. 상대적으로 대북 온건파인 최대석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등을 만나 대북 정책을 협의한 뒤 급작스레 물러나게 됐다는 의혹이 나온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도 강경한 대결 정책을 수정할 뜻이 없다는 점을 보여 줬다.  

박근혜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로 옮겨 약화시킨 것도 시사적이다. 그러면서 미국에 핵폐기물 재처리 허용을 요구하는 것은 핵개발까지 추구하며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군비 경쟁에 뛰어들려는 의지로 보인다.

한편, 인수위 기간 동안 박근혜의 공약 1호인 ‘경제민주화’는 언급조차 사라졌다. 대신 ‘또 다른 한강의 기적’ 등이 언급되며 경제 성장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주들에게 “손톱 밑 가시”를 빼 주겠다며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최근 택시법 통과가 좌절된 것을 보면, 주로 재벌에 기반을 둔 박근혜가 중소기업주들을 만족시키는 일조차 쉽게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는 노동자들의 잇달은 죽음에 묵묵부답이다. 박근혜가 노동자들의 죽음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고 있다”는 얘기가 새누리당에서 나왔지만, 지금 쌍용차에서 25번째 죽음을 바라는 고사라도 지낼 기세인 것은 바로 새누리당 이한구다. 더구나 이 추운 겨울에 1백 일이 넘도록 철탑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히려 손배·가압류·가처분을 압박하는 것이, 박근혜가 “가슴 아파하는” 방식이다.  

박근혜는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차별, 노조 탄압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더니 노동자들을 위해 준비한 것은 ‘법과 질서’라는 협박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박근혜의 노동정책이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올리고)가 아니라 ‘착취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꾀죄죄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을 만든 안종범, “국민건강보험은 사회주의적”이라며 의료민영화를 지지한 인요한, 핵발전을 옹호하고 전기요금 인상, 전력 민영화를 주장한 손양훈이 인수위에 들어간 것도 박근혜의 복지 정책이 꾀죄죄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앞날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동흡라빈스31’이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비리 의혹이 나온 이동흡이 헌법재판소장에서 낙마한 것은 지배자들이 부패 문제를 두고서 분열할 가능성을 보여 줬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고소영·강부자 인사’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을 기억하는 새누리당에서조차 이동흡의 자진 사퇴 요구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동흡 사례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시스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나라 지배자들의 DNA에는 부패가 아로새겨져 있어 박근혜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 초기부터 윤창중, 장순흥, 인요한 등에게 부패 의혹이 제기된 것은 이런 약점을 잘 보여 준다.

4대강, 특별사면 등을 두고 이명박과 갈등하기 시작하고, 기초연금 도입과 4대 중증질환 보장 등 박근혜의 복지 정책을 두고 벌써부터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저들에게 불길할 것이다.

지배자들의 분열과 부패 추문으로 인한 도덕적 정당성 약화는 노동자들이 지배자들에 맞서 싸울 자신감을 키워 줄 수 있다. 

갈수록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