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진정한 실체

 

박근혜는 군사 독재자 박정희의 딸로, 툭하면 박정희의 기억을 이용해 먹었다.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근혜의 선거 구호는 “박정희냐 김대중이냐”였고, 당선 사례가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국민들에게 표를 호소할 때는 박 전 대통령을 팔면서, 정작 [박정희] 기념관 문제는 냉소적”이라며 부총재 직에서 사퇴했다.

2000년 한나라당 부총재로 출마하면서 대의원에게 배달되는 홍보물 뒷면에 박정희의 사진과 휘호를 실었고, 한나라당에서 탈당해 자신이 만든 정당인 한국미래연합의 창당일을 5월 16일[1960년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날]로 잡았다.

그녀는 일찍이 1981년 10월 28일 일기에 “공산당 앞에 수백만이 죽어 갔다면, 그 흐리멍텅한 소위 민주주의가 [유신보다] 더 잔학한 것이었다고 말할지 누가 알 수 있으랴”고 적었다.

또한, 올해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재오가 ‘5·6공 인적청산’을 주장했을 때는 “자기 역사를 부정하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  

1999년에는 ‘재벌 개혁’을 언급한 김대중의 8·15 경축사에 대해 “대통령 주변의 정책입안자나 참모 가운데 사회주의적 시각을 지닌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며 색깔론을 폈다.

박근혜는 냉전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1999년 장기수 송환 문제가 대두됐을 때 조건 없는 송환을 반대하며 국군포로와의 교환을 주장했다. 그녀는 1·2차 파병 모두 일관되게 찬성한 ‘소신파 전쟁광’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한 인터뷰에서 “나 자신이 여성인데, 더 뭘 설명하겠는가. 그 자체로 여성의 편”이라고 말했지만 2002년 대선 때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발표한 ‘대선예비주자의 여성정책과 의식 분석’에서는 이회창보다도 종합 평균이 낮은 꼴찌였다.

박근혜는 또한 지역주의의 수혜자이다. 그녀는 1998년 보궐 선거 때 “지난 대선 때 똘똘 뭉쳐 한나라당을 지지해준 대구 사람들이 몇 달도 안 돼 국민회의 후보를 당선시킨다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나?”며 ‘대구 푸대접론’을 제기했다.

독재 찬양, 지역주의 선동, 반여성, 냉전, 우익주의가 박근혜의 참 모습이다.

김용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