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내내 광범하게 추진된 민자 SOC 사업의 결과는 민영화가 요금은 낮추고 서비스 질을 높인다는 말이 거짓임을 보여 줬다.

2000년 인천공항고속도로 개통 이후 고속도로·항만·철도 등 민자 SOC 사업에 쏟아 부은 손실 보조금은 2조 8천6백46억 원에 이른다.(〈서울경제〉) 

이처럼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기업들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있지만, 사업자들은 통행료를 잇따라 인상했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 27일에 8개 민자 도로 사업자들은 통행료를 1백~4백 원씩 올렸다.

인천공항철도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다. 얼마나 재정을 파탄 냈으면 결국, 2009년 이명박 정부조차 국유화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투입된 1조 2천억 원도 결국 사기업주들에게 막대한 매각 차익을 안겨 줬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은 공공 서비스를 사기업에 맡기면 재앙이 따름을 보여 줬다. 또한, 민영화가 불가피한 게 아니며 정부가 원하면 국유화를 하는 것도 가능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민영화에 대한 집착을 여전히 버리지 않았으며, 민영화를 추진하려고 기만적인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소비자의 “선택”이니 “다양성”이니 하는 말들은 민영화가 처음 추진된 199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역대 정부는 이를 더욱 계승·발전시켰다. 그들은 민영화가 수십 년 동안 유지돼 온 “권위주의적”인 국가 권력을 축소하는 한 방법인 것처럼 포장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을 전면적 민영화에 대한 대안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효과를 낸다. 또 대기업들이 운영난에 허덕이는 협동조합들을 흡수함으로써 자기 몸집을 불리고 공공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해 준다. 결국 민영화의 또다른 경로가 되는 것이다. 

영국 웨스트 요크셔 지역 버켄쇼의 “학부모 연맹”은 영국 최초가 될 수도 있는 “학부모 운영” 학교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구상인즉 학교를 민간기업인 세르코에 넘기는 것이다. 

세르코는 철도, 감옥, 이주자 구금 센터, 레저 센터, 과속차량 단속 카메라 등을 운영할 뿐 아니라 브래드퍼드, 월솔, 그리고 스토크 시의 교육청까지 접수하고 있으며 해군 기지에서 “선단 지원”을 담당하며 심시어 앨더매스턴의 핵무기 개발까지 관리하는 문어발 기업이다.

이 회사의 이윤은 올해 1억 9천5백만 파운드로 치솟았는데, 그 한 푼 한 푼이 노동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세르코 회장 크리스토퍼 하이먼은 “우리가 여력만 있다면 붙잡을 수 있는 기회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자들은 국유화를 지지하며 중앙·지방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운영하길 바란다. 각급 정부는 그 책임성 측면에서 숱한 한계가 있음에도 어쨌든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됐지만, 사기업들은 그렇지 않다. 

이윤 논리

선출된 정치인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통제력이 아무리 적다 해도 사기업 사장에 대한 통제력보다는 크다. 만약 지자체장이나 의원 들이 영리병원을 도입하거나 지방 의료원을 폐쇄하려 한다면 자신을 선출해 준 주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기업 사장은 그런 압력을 받지 않는다. 삼성이나 현대는 병원이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하면 보통 사람들의 필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을 폐쇄할 수 있다.

민영화를 반대하는 데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근거도 하나 있다. 우리는 공공서비스가 이윤이 목적인 사업처럼 운영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오히려 서비스 이용자들의 필요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고 본다.

공공서비스를 이윤 획득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비즈니스 지상주의는 평범한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끔찍한 피해를 초래한다. 그래서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민영화에 반대한다. 

물론 우리가 국유화를 완벽한 대안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듯이 정부는 결코 모범적 고용주가 아닐뿐더러 공공서비스의 모범적 수호자도 아니다. 

또한,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부 통제가 곧 평범한 사람들의 통제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권력은 의회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노동자 통제에 대한 요구도 제기해야 한다. 이는 공공서비스에 대한 공적 소유뿐 아니라 노동자들에 의한 민주적 운영을 뜻한다. 즉 사장들이 아니라 선출되고 소환 가능한 노동자 위원회들이 모든 작업장을 접수하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이윤이 아닌 공공선을 위해 경제를 운영함을 뜻한다. 또한 오늘날 사회를 운영하는 자본가들이 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그들을 몰아내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자는 말이기도 하다. 

📱 스마트폰 앱으로 〈노동자 연대〉를 만나 보세요!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아이폰 앱 다운로드

📮 매일 아침 이메일로 〈노동자 연대〉를 구독하세요! 아이폰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