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마르크스주의

진정한 남녀 평등

콜린 바커

65세의 노혁명가 콜린 바커가 마르크스주의의 여성해방론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이 자명하다고 믿는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이렇게 선언한다. 아마도 세계의 절반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여성은 어떨까?

형식적 민주주의는 초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일부였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근대 사회주의 운동의 등장 덕분에 남녀 평등이 모든 진보적 사상의 특징이 됐다는 것이다.

인종차별과 마찬가지로, 여성 차별에서도 온갖 근거 없는 보수적 사상들이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다.

그런 주장들은 모두 우리 몸의 차이 때문에 여성은 열등한 존재라는 터무니없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합법적 여성 차별의 역사는 오래 됐다. 여성은 다른 재산이나 가재도구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이었다.

영국에서는 1928년이 돼서야 성인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했다. 1930년대에 타자수(타이피스트) 공무원이었던 내 어머니는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1960년대에 내 배우자는 모터 달린 자전거를 사고 싶어했는데, 돈은 자신이 내는데도 할부 구입 영수증에 대신 서명해 줄 남자를 구해야만 했다.

심지어 1980년대에도 그녀는 자신의 여권에 우리 아이들을 등재하기 위해 나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했다. 내게는 그런 의무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남녀 평등을 가로막는 법률적 장벽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진정으로 평등해진 것은 아니다.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훨씬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가족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집안 일을 더 많이 한다. 무엇보다, 여전히 여성이 자녀 양육의 주된 책임을 떠맡고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여성의 역사야말로 변화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듯하다.

 

임금 차별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여성은 출산의 굴레에 매여 있었다. 효과적인 피임법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아야 했고 남성보다 일찍 죽었다. 근대의 임신 조절 기술 덕분에 가족 규모가 줄어들면서 여성의 평균수명이 연장됐고 여성 자유의 가능성과 현실성 모두 크게 확대됐다.

두 세대 전에 노동계급 여성은 대부분 결혼하면 일자리를 포기해야 했다. “행복한 가정주부”가 되는 것이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이었다.

양차 세계대전과 자본주의의 끝없는 노동 수요가 그런 현실을 바꿔 놓았다. 오늘날 대다수 기혼 여성이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런 두 가지 변화가 1960∼70년대에 여성 운동이 쟁취한 일련의 개혁들에 토대가 됐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야만적 현실은 더 이상의 승리를 가로막았다.

출산과 양육의 경제적 부담은 주로 여성이 떠맡고 있다. 출산·양육의 혜택은 사회 전체가 얻는데도 말이다.

내 친구 한 명은 1970년대에 출산 후 6주 만에 다시 전일(全日) 근무 직장에 나가야만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체제가 개혁되고 시간제 근무가 가능해진 뒤에야 그녀는 시간제 근무를 할 수 있었다.

지금 그녀의 연금은 형편없이 적다. “충분한 금액을 납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그녀는 늘그막에 빈곤에 직면해 있다. 다른 수많은 여성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나쁜 것들 가운데 좀 덜 나쁜 것을 골라야 하는 처지에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적절한 가격의 보육시설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연금법이 여성을 차별하기는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이 여성에게 이롭다는 것은 분명하다. 전업 주부의 삶이란 권태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들은 대체로 임금 차별에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어린 자녀를 가진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들이 부모 노릇을 하는 데 필요한 것에 대해 고용주들은 기껏해야 입발림말이나 할 뿐임을 깨닫는다.

지난 두 세대 동안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엄청나게 바뀌었다. 50년 전에는 요리하고 장 보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는 남성이 거의 없었다. 오늘날에는 대다수 남성이 그런 일을 한다.

지난 20년 동안 여성 평등권의 신장 속도는 느려졌다.

노동시간 증가 압력, 무상 피임의 감소, 육아보조금과 연금 삭감이 결정적이었다. 학교 성교육이 위협받고 있다. 적절한 출산수당 지급 문제는 전혀 진전이 없다.  

 

오래된 전투

 

오늘날 자본주의의 한계들이야말로 중요한 개선을 가로막는 핵심 장벽이다. 보육[시설] 확대, [남녀간] 임금과 기회의 평등, 여성의 능력과 재능 계발 등은 대규모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 여성들은 전보다 훨씬 평등해졌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미래의 어려움들, 예컨대 결혼 생활을 시작했을 때 겪게 될 어려움을 과소평가한다.

니나 시몬(Nina Simone)[공민권 운동에 참가한 흑인 여성 가수]은 어느 멋진 노래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유롭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어.” 오늘날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법적 평등과 여성 교육을 위한 오래된 전투가 여전히 계속돼야 한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임금과 기회의 진정한 평등이 여전히 요원하다. 여성은 여전히 두려움―불안정한 삶과 신체적 공격에 대한 두려움―속에서 살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여성의 가치가 육체적 특징에 좌우된다는 관점을 뛰어넘어야 한다. 우울증이 만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쓸모없다는 느낌에 고통받고 있는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여성의 풍요로운 삶은 남성을 희생시켜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자유와 평등이 신장되면 남성의 삶 역시 풍요로워질 것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우리 세대가 여성 운동을 통해 부분적으로 깨달았듯이 말이다.

역사를 보면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고정불변의 것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그리고 남성도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문제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해답을 발견할 날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는 먼 길을 왔지만 아직 최선에 이르지는 못했다. 새로운 세대들은 우리 시대를 돌아보며 깜짝 놀라며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들에게는 진정한 남녀 평등이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 시대가 야만스러워 보일―실제로 그렇다―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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