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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본주의에 불만 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
쉽고 재미있게 읽는 자본주의 사상사

△《자본주의에 불만 있는 이들을 위한 경제사 강의》E.K 헌트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 3백76쪽, 1만 6천5백 원

이 책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 준다. 저자가 설명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궤적을 보고 있으면,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이 결코 자연 발생적이거나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세 시대에 사회 복지 증진과 무관한 부의 축적은 비난 대상이었다. 물론 이것은 모두 신이 정해 준 사회적·경제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와 결합돼, 기존 질서를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 저자는 이런 이데올로기를 “기독교 가부장 윤리”라고 부른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성장하는 과정은 기독교 가부장 윤리에 맞서 개인의 탐욕과 축재 욕구를 옹호하는 과정이었다. 예컨대, 프로테스탄티즘은 인간이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될 수 있다는 로마 가톨릭의 교의에 맞서 개인의 믿음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교의를 내세웠다. 이는 새로운 중간계급 장인들과 소상인들에게 커다란 호소력을 발휘했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개인의 탐욕이 자본주의 시장과 만나면 사회 전체에도 유익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책은 머릿속 관념의 변화가 자본주의를 불러왔다는 베버식 설명을 넘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형성이 가능했던 사회·경제적 조건을 설명한다. 중세 시대에 소 대신 말을 농업에 이용하거나 삼포제를 도입해 이룩한 생산력 발전, 이를 통해 발전한 원거리 무역, 농촌과 도시의 기능 분화가 어떤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낳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도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은 체제였다. 자본주의가 낳은 끔찍한 현실과 노동계급의 저항 속에서 체제를 비판하는 사상이 발전했다.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시장 자체가 악폐를 낳고, 시장을 넘어서 협동적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이를 근절할 수 있다고 봤다.

여러 체제 비판가들의 사상 중 마르크스주의는 가장 중요하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흔한 오해들을 짚고 넘어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가 다른 사회주의 사상에 견줘 어떤 강점이 있는지도 보여 준다.

마르크스주의

엘리트주의에 빠져 버린 나머지 제국주의를 지지한 일부 페이비언주의자들, 선거에서 표를 얻는 데 치중해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 수정주의자들과 달리, 혁명적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일관되게 체제에 맞서 싸워 왔는지도 보여 준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부의 집중이 두드러졌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상대적으로 무기력한 소규모 행위자들로 구성된 사회”라는 전제를 토대로 이론을 전개했다.

부르주아 경제학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큰 나머지 지배자들은 “기독교 가부장 윤리의 봉건적 형태와 빼닮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재벌들이 자연적으로 우수하며 대중을 돌보는 가부장 같은 구실을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이 또한 지배자들이 자신의 부를 정당화하는 방법이었을 뿐이다.

저자는 다양한 자본주의 옹호론과 그에 대한 비판, 그리고 아래로부터 저항을 상세하게 다룬 뒤, 사회주의의 ‘밝은 전망’을 언급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은 서구 경제 이데올로기의 역사라는 커다란 주제를 한 권에 잘 압축했다. 또 기존 경제 서적에서는 잘 거론되지 않는 비판적 사상가들의 논의도 함께 설명한다. “자본주의에 불만”이 있고 자본주의 옹호자들의 논리를 반박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