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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평화를 바라는 신념:
지배자들의 총알받이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하나님의 교회’ 등을 이단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내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나를 전도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는 정도다. 그런데 전쟁 문제에서는 종교적으로 보았을 때도, ‘여호와의 증인’의 태도가 일부 개신교도의 태도보다 옳아 보인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은 타민족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인들, 이방인들’이라 해 전쟁으로 죽이고 그 땅을 점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의 구원이었다. 그 점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타민족을 지옥의 불쏘시개 정도로 치부하며 도륙한 것은 신이 보기에도 ‘악한’ 짓이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박정희 정권 때에도 병역을 거부한 것은 평화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선한 싸움’으로 포장하는 것은 이에 견주면 참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북한의 지배계급은 악하지만, 전쟁이 나면 북한의 가난하고 헐벗은 인민들부터 총알받이가 된다. 남한의 지배계급 역시 악한 것은 마찬가지다.

3월 13일 ‘전쟁 반대와 평화 실현을 위한 촛불집회’ ⓒ이미진

전쟁이 나면,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의 수많은 젊은 남성들이 전쟁터로 끌려간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나라이기 전에, 가족과 친구일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나 현대의 정몽구를 지키러 가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을 것이다(그런데 사실은 그렇다). 그들의 희생정신은 대단하지만, 사실 역사와 현실을 보면 그런 정신은 만들어지고 강요되는 것 같다.

박근혜는 안보가 위태롭다 하고 국방부 장관이 되겠다는 자는 선제타격을 주장한다. 그런데 박근혜가 지명한 장관들은 병역기피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안보를 제일 먼저 내세우는 새누리당 의원들 중 병역의 의무를 다한 자는 많지 않다. 그들과 그 자식들은 ‘신의 아들’이다.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가난한 노동계급의 자식들이다.

건국의 아버지?

역사적으로도 그랬다. 이승만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들지만, 그는 한국전쟁이 났을 때, 국민에게 안심하라며 거짓말하고는, 자기는 피난 가면서 한강 다리를 폭파해 버렸다. 박정희는 혈서를 써 내밀며 일본에 충성을 다짐했고, 독립군을 쏴 죽이는 것으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나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들 주장하지만, 우리는 전쟁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전쟁 억지력은 우리 편이 군사적으로 우월할 때 있는 것이다. 서로 엇비슷한 상태로 힘 불리기에만 집중한다면, ‘평화를 위해서’라고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긴장만 높아질 뿐이다. 지켜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노동계급의 자식들은 2년 동안 인권을 짓밟히며 강제로 ‘봉사’하다가 전쟁이 나면 끌려가 총알받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안보를 내세우면서도 병역조차 하지 않는 지배계급은 뒤에서 군수산업으로 배를 불리고 해외로 도피할 것이다. 또, 파괴된 자본 위에서 자본주의 위기의 딜레마인 이윤율을 회복하고 다시금 성장할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종착지는 전쟁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고조된 긴장 상황은 단편적 현상으로 볼 것이 아니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서해에서 동아시아의 위기가 어떻게 격화돼 왔는지를, 중미 갈등 속에서 미국이 북한을 악마화하며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속에서 남한 지배계급도 장단 맞추며 북풍몰이로 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