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는 살아도 노숙인은 못 사는 “Hi Seoul(하이 서울)”

변혜진(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부장)

서울시는 지난 4월 26일 서울시 노숙인 지원사업 민간위탁 기관인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를 통해 “노숙인 의료구호비가 과다 지출되어 통원치료만을 노숙인 의료구호비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입원과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관할 구청을 통하여 의료보호로 지정받아야 한다”는 지침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나 거주지가 있는 빈민들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한달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노숙자들은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쉼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다.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이 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이야기이다.

백보를 양보하여 의료보호지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달 간 기다려야 한다. 노숙자들의 건강상태는 자연히 매우 심각하다. 입원과 수술을 한달 간 기다리라고? 이는 노숙자들은 병에 걸리면 죽어야 한다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조치이다. 당장 입원과 수술을 받아야 하는 노숙인 환자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들은 말 그대로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다.

노숙자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노실사, 노숙인인권 공동실천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빈곤사회연대(준) 등이 공동 항의행동에 돌입했다. 이들의 요구는 당연히도 예산을 늘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구호 중 하나는 “잔디는 살아도 노숙인은 못사는 Hi Seoul(하이 서울)”이었다.

현재 서울시의 노숙인 의료구호비예산은 정부가 70퍼센트, 서울시가 30퍼센트를 댄다. 서울시의 설명으로는 8억여 원이 책정된 예산을 1분기에 다 써버렸다는 것이다. 이 예산은 작년의 예산보다도 2억 원이나 삭감된 것이다.

노숙인은 우리 사회의 가장 주변적인 계층의 한 부분이다. 대체로 이들은 건설직종이나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다가 실업률이 올라가면 노숙인이 되고 일자리가 생기면 쪽방 생활을 하거나 노동자로 돌아간다. 그러다가 다시 경제위기가 오면 노숙인이 되는 처지이다. 물론 산재 등으로 노동능력이 없어진 노동자 출신들도 있다.

노숙자생활이 몇 번 반복되면 알콜중독과 그 외 여러 질병 등으로 더 일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노숙인들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예민하게 반영하기도 한다.

1998년 경제위기 때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잘 알려진 한 예이고, 2001년 의사폐·파업 때 평소에 일반병원을 이용하던 사람들이 국공립병원으로 몰리자 노숙인들이 행려병자로서 이용하던 공공병원에 노숙인이 입원할 수 없어 이들 노숙자들의 거리 사망률이 극적으로 오른 것이 또 다른 예이다.

2002년 서울시는 노숙자가 전체적으로 2천 명이 줄어들었다고 자랑삼아 발표했다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 거리사망자와 행려병자 사망자를 합친 숫자가 2천 명이라고 밝혀 ‘개망신’을 당한 바도 있다.

정부당국자들과 자본가들에게는 노숙자들은 거리 미관을 해치는 ‘거지’들일 뿐이다. 사실 그들은 노동과정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경기변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업자들이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종착지이다.

노숙자들은 죽여 없애야할 폐품이 아니며 거지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자활할 생활터전과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