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많은 활동가들은 매우 옳게도 [지난해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담에서 미국과 유럽의 계획을 좌절시킨 것을 찬양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기들의 의제를 다른 나라들에 강요하려던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상에 대한 혼란도 흔히 뒤섞여 있었다. 칸쿤 사태를 남아공·인도·브라질의 “G3” 정부가 전 세계 빈민들을 위해 일으킨 반란으로 여긴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나라들이 “새 반둥[회의]”[50년 전 냉전에 가담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저항한 제3세계 국가들의 기구]라는 말도 들렸다.

올해 1월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열린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 스페인어 머릿글자를 따서 ALCA로 알려진) 결성 협상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한 구실에 대해서도 비슷한 환호가 있었다. 예컨대, 그 협상이 거의 붕괴할 뻔한 뒤 하인츠 디터리히는 “라틴아메리카 파워 블록이 존엄성의 장벽을 세웠다.” 하고 썼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주장들과 맞지 않는다. 브라질·남아공·인도 정부들은 신자유주의 의제들을 전면 수용하고 있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는 신자유주의 의제들에 맞선 제3세계의 반란을 이끌고 있지 않다. 룰라의 전임자였던 신자유주의자 카르도주는 지난 2월에 그들의 정책에 근본적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런 연속성 때문에 룰라의 노동자당(PT)은 세 명의 좌파 하원의원들과 한 명의 상원의원을 내쫓았다.

월든 벨로가 지적했듯이, 북반구의 농산물 시장 개방이 더 확대되면―칸쿤에서 브라질과 그 밖의 다른 국가들은 이렇게 요구했다―독점적 수출 산업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이다. 브라질에서 이런 독점적 수출 산업은 경작 가능 토지의 46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는 1퍼센트도 안 되는 농장들, 오랜 사탕수수 재배업을 지배하는 강력한 독과점 업체들, 그리고 지금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씨앗을 사용하며 몬산토와 협력하고 있는 대규모 콩 생산업체들이다. 남아공에서는 85퍼센트의 토지와 그 비슷한 비율의 공업을 소유하고 있는 백인들이다.

인도의 BJP 힌두교 국수주의 정부는 칸쿤에서 [인도의] 설탕 제조업체인 트리베니, 발람푸르 치니 밀즈 같은 대기업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해외 시장 개방 확대를 자신들의 농산물 가격 인상 방안으로 여긴다. 그리 되면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는 인도 인구의 3분의 1은 생활이 더 곤란해질 것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 중 하나인 브라질의 국내 자본가 계급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들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관세 동맹을 통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같은 나라의 자본을 휘하에 거느리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해 왔다. 그렇게 하면 미국이나 유럽 다국적 기업들과의 협정·제휴·합병 조건을 더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룰라 정부는 이 계급의 비위를 맞춰 왔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전임자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지속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룰라 정부는 특별히 브라질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비록 그것이 미국의 일부 요구에 저항하는 것을 뜻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룰라 정부는 유럽연합(브라질에 대한 투자가 미국보다 약간 더 많은)과 동아시아(중요한 원료 수출 시장으로 점차 떠오르는)를 이용해 미국의 압력에 대항하려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외채 상환과, 복지 삭감 요구에 동의하는 정책과, 미국 자본과 협력하는 ALCA(미주자유무역지대)의 전반적 틀 안에서 국민 자본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싸우는 정책 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없다. 이 때문에, 좌파가 룰라 등등의 태도를 칭송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심지어 인도와 남아공 같은 나라의 자본가 계급들에게는 “민족 자주”의 요소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즉 그런 나라들은 “신식민지”라거나 “재(再)식민지화” 과정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틀렸다.

때로 이런 말은 단순한 미사여구이거나 1950년대·1960년대·1970년대에 부르주아·쁘띠부르주아 민족주의 정치인들에게 배신당한 데서 비롯한 널리 퍼진 배신감의 표현이다. 그것은 한 가지 근본적 요점을 강조한다. 즉, 착취와 억압의 서열 꼭대기에는 미국 자본주의가 자리잡고 있으며, 하위 착취자들은 그 미국 자본주의와 거래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제국주의의 강점을 과장함으로써 현실을 더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오늘날 제국주의 지배 구조는 옛 유럽 제국들과 다르다. 그들은 군말 없이 복종하는 총독들을 내세워 식민지들을 지배했다. 오늘날은 서로 다른 국가 간에 서열이 있다.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각국은 저마다 독자적인 무력 독점 기구, 조세 제도, 정부 지출 할당 제도, 그리고 자본가 계급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각국은 항상 다른 국가를 희생시켜―보통은 평화적 수단으로, 가끔은 군사적 행동을 통해―자국의 처지를 개선하려 한다. 이를 통해 국민적 자본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해외 다국적기업들과 제휴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 다국적기업이 되어 세계 무대를 주름잡을 수도 있다.

중간 규모 경제를 가진 국가의 지배자들과 거대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자들 사이에는 합의뿐 아니라 갈등 요인들도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칸쿤에서 벌어진 사태를 이해할 수 없으며 1년 전 유엔에서 부시의 전쟁이 거부당한 사실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디터리히 같은 사람들은 그런 전술적 차이들을 제국주의에 대한 전략적 도전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틀렸다. 그런 착각을 공유하는 일부 좌파는 민족주의적 미사여구를 동원해 독자적인 소(小)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자국 정부를 지지하게 만드는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중국·파키스탄 분쟁 때도 많은 인도 좌파가 그런 태도를 취했다.

물론 북아메리카·유럽·일본 “3극 체제”의 지배력이 장기간 계속될 수 있다. 그러나 더 작은 국가들과 그 국민 자본주의들에게도 운신의 폭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가끔은, 칸쿤에서 그랬듯이, 이 때문에 체제 전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브라질·남아공·인도의 신자유주의 지배자들을 칭송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더 큰 빵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다투겠지만, 빵집만은 끝까지 지키려 한다. 그 빵집 안에서 자신들의 몫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빈민들의 입에서 빵 부스러기를 떼어가기 위해 거대 제국주의들, 특히 미국과 기꺼이 거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