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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안정 ― 제국주의론으로 파헤치기 ②:
냉전 해체 이후의 세계 질서와 ‘불량 국가’

왜 동아시아에서 국가 간 긴장과 갈등이 커지는 것일까? 마르크스주의의 제국주의론으로 이를 분석하는 연재를 싣는다.

미국의 북한 악마화는 냉전 해체 이후 제국주의 질서가 변한 상황과 관련 있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 지배계급은 미국이 앞으로도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독보적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불안해 했다. 당시 미국의 전략가인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주장했다.

“냉전이 끝나자 일부 관찰자들이 ‘단극적인’ 세계 또는 ‘유일 초강대국’ 세계라고 부른 상황이 조성됐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은 냉전 초기와 달리 세계적 의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처지가 못 된다. … 미국은 냉전기에 결코 경험하지 못한 종류의 경제적 경쟁에 직면할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세계경제 산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이었다. 그러나 냉전이 끝날 즈음엔 사정이 달라졌다. 그동안 미국 자본주의는 성장했지만, 유럽과 일본 자본주의는 미국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했다. 중국은 선진국들보다 세 배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냉전이 끝나자 미국은 ‘불량국가’를 상대로 군사력을 과시하며 패권을 지키려 했다 2003년 이라크에 쳐들어간 미군. ⓒ사진 출처 James Gordon

이것은 냉전의 산물이었다. 당시 초강대국인 미국은 가장 많은 군비를 부담했다. 막대한 군비 지출 덕에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고 독일과 일본은 수출 시장을 찾을 수 있었다.

한편, 독일과 일본은 독자적인 대규모 군비 지출이 없었기 때문에, 산업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었고 생산력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 독일 기업들 간의 경쟁은 각각의 국가들 간의 지정학적 경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를 두고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부분적 분리’라고 지적했다. 소련이라는 ‘공공의 적’에 맞서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지도력 아래 단결한 것이다.

그런데 냉전의 해체는 이런 제약을 푸는 효과를 냈다.

곧, 소련 제국의 붕괴는 “엄격한 양극적 세계 분할을 무너뜨렸고, 그럼으로써 두 초강대국이 아니라 다수의 열강이 무대를 지배”하는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다극화된 세계로의 복귀”(알렉스 캘리니코스)를 알렸다.

미국은, 냉전기 동안 미국의 우산 아래 있으면서 훌쩍 커버린 다른 열강이 이제 자신에 도전할까 봐 우려했다.

그런데 미국에는 다른 주요 열강이 갖지 못한 커다란 장점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막강한 군사력이었다. 미국의 지배자 일부는 이런 군사적 우위를 이용해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려면 무너진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적’이 필요했다.

1990년대 초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새로운 위협이 지난 45년 동안 이어진 동서 대립 밖에서 출현했다”고 말했다. ‘불량 국가’는 미국이 만들어 낸 ‘새로운 위협’이었다. 이라크·이란·쿠바·북한 등이 지목됐다.

새로운 ‘적’

그래서 1990년대에 미국은 1980년대보다 군사 개입을 더 많이 했다. 미국은 ‘지역 깡패’를 손보는 방식을 취했지만, 명백히 이것은 최강의 군사대국으로서 다른 강대국들에 자신의 패권을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예컨대, 1991년 걸프전은 다른 열강한테 석유를 안정적으로 수급하려면 미국의 힘에 의존해야 함을 일깨운 전쟁이었다. 발칸 전쟁(1999년 나토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은 유럽연합의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미국만이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 한 것이었다.

2003년 이라크 침략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9·11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네오콘*들은 이라크를 노렸다. 유럽과 중국 등 주요 열강이 의존하는 중동 석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9·11 테러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이었다.

미국은 이런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이데올로기도 발전시켰다. ‘독재자’에게 그 나라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인도주의적 개입”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독재 정권 수립을 돕고 또 든든한 후원자 구실을 해 온 미국이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다. 게다가 미국의 개입이 낳은 결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학살과 야만 그 자체였다.

북한, 동아시아판 이라크

미국이 1991년 이후 동아시아에서 지목한 ‘불량 국가’는 바로 북한이었다.

동아시아에는 중국과 일본처럼 잠재적으로 미국의 세계 패권을 넘볼 수 있는 나라들이 있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려를 키웠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은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대놓고 ‘너를 겨냥해서 포위망을 짜겠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북한은 미국에 매우 유용한 존재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 북핵 문제는 지나치게 불거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엄포를 놓았다가 북한이 반발하면 양보 제스처를 취하며 시간을 끌고, 또다시 약속을 먼저 깨뜨리며 엄포를 놓는 식의 악순환을 반복했다.

물론 상황이 미국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북한은 회를 거듭할수록 강도 높게 반작용했다. 원래 핵이 없었던 북한이 2006년 10월에는 마침내 핵실험을 감행하고, 이제는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은 미국의 ‘위기 관리’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 또, 북핵이 주변 다른 나라들에 핵무장을 부추긴다는 점도 미국에 골칫거리다.

이런 과정 속에서 동아시아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고 제국주의 국가 간의 직접 충돌 가능성까지 불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