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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공공병원 폐쇄가 아니라 대폭 확대하라

지금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보편적 복지) 것이다. 그런데 홍준표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선별적 복지)마저 없애려 한다.

진주의료원 같은 공공병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은 사실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홍준표는 대중이 낙후하고 서비스 질이 낮은 공공의료를 불신한다는 사실을 이용해 복지가 ‘낭비’되고 있다는 생각을 퍼뜨리려 한다.

사실 이런 불신이 광범하게 퍼져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역대 정부들이 대형 병원과 제약회사 들에게는 온갖 특혜를 주면서도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는 아껴 왔기 때문이다.

의료 시장화를 막기 위한 전초전 4월 6일 ‘돈보다 생명 버스’ 참가자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한 진주의료원 환자들. ⓒ이윤선

박정희 정부 이래로 지방의료원은 늘 찬밥 신세였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꿈’이 복지국가였다지만, 1975년까지 정부 예산 중 의료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퍼센트도 안 됐다. 1970~75년에 전체 의료비 지출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줄었다.

민간병원들은 그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돈을 갈퀴로 긁어 모았다.

의료보험 제도 도입은 노동자들에게 이로운 것이었지만 모순이게도 이런 상황을 고착화하는 구실도 했다. 지역과 직장 별로 나뉘어 있던 의료보험공단은 1997년 IMF를 지나면서 비로소 통합됐는데, 그 전까지는 공단 별로 재정 격차가 컸고 아예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전두환 정권이 추진한 ‘공공의료제도 개선’은 지방의료원 재정을 시·도 재정에서 분리해 ‘독자생존’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공공병원이 독자 생존하려면 민간병원처럼 수익성 위주로 운영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민간병원이 하지 않는 공공의료 기능도 수행해야 했다. 결국 재정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1990년대에 초대형 민간병원들이 세워지고 IMF 이후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공공병원은 오히려 줄었다. 군산의료원은 1998년 원광대학교 병원에 위탁됐고, 춘천의료원은 2001년 강원대학교에 매각됐다. 제주의료원은 2002년 제주대학교에 병원을 매각했다. 대구 적십자병원은 2010년 아예 폐원했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 전체 의료기관 중에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의료기관 수를 기준으로 6퍼센트가 안 된다. 병상(침대) 수를 기준으로 해도 10퍼센트 밖에 안 된다. 이 중에 사실상 민간병원과 구분이 안 되는 국립대학교 병원을 빼면 그 비중은 훨씬 줄어든다.

IMF 이후 가속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수익성’ 논리를 강화하면서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공공병원이더라도 ‘적자’를 내는 것은 ‘국민의 혈세를 좀먹는’ 파렴치한 짓으로 여겨졌다. 공공병원도 수익성을 추구해야 했고 그나마 규모가 크고 정부 지원을 받는 국립대 병원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소규모 지방의료원은 계속 외면 받았다. 국립대 병원조차 민간병원 뺨치는 구조조정과 돈벌이 진료로 내몰렸다.

민간병원에서는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쫓겨나 진주의료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 ⓒ이윤선

돈벌이를 위해 과잉진료가 크게 는 반면 정작 필요한 부문에는 인력과 재정이 줄었다. 환자들은 입원 며칠 만에 단물을 빨아먹고 내쫓는 병원 측에 불만을 토로했고, 누적된 격무에 시달린 병원 노동자들은 이들의 항의에 진지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도입하려 한 영리 병원은 이런 추세의 극단을 보여 준다. 영리 병원은 민간병원에 대한 최소한의 공적 규제를 없애고 건강보험을 무력화하는 것인데, 이는 주주들과 민간보험사들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몇 해 전부터 무상의료 등 복지 확대 요구가 커진 것은 이런 추세에 대한 커다란 반감과 불만을 보여 준다.

박근혜조차 대선 후보 시절 복지 확대 공약을 내놓았던 것은 이런 대중적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축소 계산하는 꼼수를 썼다.

그러나 공공병원을 대폭 늘리지 않고서는 재원을 늘려도 그 돈의 상당 부분이 제약회사와 병원의 이윤으로 들어가 병원비를 낮추거나 공공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기 어렵다. 한국의 의료 체계가 사실상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병원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와 민영화

지난 몇 년 동안 건강보험료가 오르고 건강보험 재정이 커져도 보장성이 늘지 않은 까닭이다. 과잉 진료와 약물 남용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무상의료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의료비를 대폭 낮추거나 무상의료를 하려면 공공병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실제로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나라에서는 대부분 공공병원 비율이 80퍼센트를 넘는다.

반대로 홍준표의 진주의료원 폐쇄가 성공하면 그나마 얼마 없는 공공병원도 폐쇄 압력을 받을 것이다. 이미 강원도의 새누리당 도의원들이 삼척의료원을 없애려고 최문순 도지사에게 압력을 넣고 있다. 충남에서도 의료원을 통합 구조조정하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공공병원이 민간병원의 과잉 진료를 일부 막는 구실을 해왔기 때문에, 이는 가뜩이나 비싼 의료비를 더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진주의료원 폐쇄를 의료민영화 신호탄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공공병원 폐쇄가 아니라 대폭 늘려야 한다. 중앙 정부가 책임지는 국립병원들을 대폭 늘려야 할 뿐 아니라, 시·도립 병원들도 지방자치정부별 재정 상황에 따른 불안정성과 불균등성에 맡겨두지 말고 중앙 정부가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

무엇보다 대폭적인 재정 지원과 인력 확대를 통해 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랑하는 사람이 돈이 없어서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비극이 사라질 수 있다. 민간병원들의 의료 상품화와 돈벌이 속에서 낭비되는 재원은 이런 데 쓰여야 한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맞선 투쟁과 그 성과는 바로 이런 과제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