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에 대한 태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비판적 지지

최일붕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다함께’ 회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사회주의자들[그리고 반자본주의자들]이 탄핵 반대 운동을 지지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러시아 혁명가 레닌이야말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심지어 경찰이 만든 노동조합 운동까지 지지했다.

1902년 러시아 보안경찰은 자신이 조종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모스크바의 경찰 총수 주바토프가 노동자 운동을 감시하고 위협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다.

그러나 주바토프 노동조합 운동은 보안경찰의 의도와 정반대로 나아갔다. 노동자들은 합법 주바토프 조직들을 이용해 파업을 조직했다.

1905년 혁명의 발단이 됐던 1월의 동궁(러시아 황제의 궁전) 행진을 주도했던 사람도 주바토프 노동조합 운동의 지도자였던 가폰 신부였다.

레닌은 가폰 신부가 주도하는 주바토프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비록 그것이 처음에는 경찰이 고안한 운동일지라도 그 운동 속에서 1905년 혁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다수 볼셰비키는 주바토프 운동을 지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레닌의 태도는 플레하노프 등 멘셰비키가 취했던 태도와도 확연하게 구분됐다. 멘셰비키는 이 운동에 적대적이었다.

어떤 입장이 더 올바랐던 것일까?

오늘날에도 많은 좌파들이 어떤 운동의 지도 이념이나 투쟁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운동을 지지하지 않거나 지배자들의 탄압으로부터 방어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운동이나 투쟁을 운동의 지도 이념이나 전술에 따라서가 아니라, 우선 그 운동에 참가하는 사회세력과 운동의 잠재력에 따라서 판단한다.

비판적 지지 문제는 바리케이드 문제다. 만약 어떤 투쟁의 특정 전술이나 특정 요구가 잘못됐다고 해서 그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같은 바리케이드에 서 있는 병사들의 무기가 형편없다고 해서 함께 전투하는 것을 꺼리는 것과 같다.

 

바리케이드

 

물론 운동을 지지한다고 해서 잘못된 지도 이념이나 전술까지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을 이해하게 된 사람들은 곧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비판을 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지지할 수 있는 것인가?”

투쟁과 행동을 지지하면서도 지도 이념에는 반대한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이 혼란돼서가 아니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상반되는 두 명제로 표현했다.

“사회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의 힘으로만 이룰 수 있다.”

만약 첫째 명제만이 진실이라면 사회의 혁명적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둘째 명제만이 진실이라면 사회주의자들은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항상 저절로 단결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두 가지 명제는 다 옳고, 현실의 두 측면을 표현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서만 지배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잠재력을 현실화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들과 피억압 대중의 투쟁에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되고 투쟁을 지지하고 동참함으로써 진정한 대안과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비판적 지지는 변혁 정치조직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방식이다.

어떤 운동을 지지하기가 찜찜한 경우에 나름대로 묘책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탄핵 정국 때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얘기인즉 이렇다. “투쟁을 꼭 지지해야 개입할 수 있는가?”

이것은 “꼭 물에 들어가야 수영할 수 있는 것입니까?” 하고 묻는 것과 같다.

투쟁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 투쟁에서 바리케이드 한편에 선다는 것을 뜻한다. 중립적 입장으로 전쟁에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사회주의자들이 계급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비판적 지지는 쉽게 입증될 것이다. 집단적 투쟁을 통해 지배자들의 사상에 도전하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이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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