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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대안 논쟁:
유로존 위기에서 부여잡을 고리는 무엇인가

2010년에 시작한 유로존 위기가 벌써 4년째다. 최근 키프로스 위기에서 보듯 위기는 끝날 기미가 없다. 그리스 경제는 몇 년째 내리 수축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더 크고 중요한 경제도 위기다. 이런 심각한 위기는 강력한 저항을 불렀고, 그에 따라 정치 위기도 깊어졌다.

깊은 위기에 빠진 유럽은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의 “약한 고리” 중 하나다. 그만큼 유로존 위기와 저항은 국제 좌파에 중요한 쟁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나라에서도 유로존 위기를 다룬 《위기·반란·대안》(책세상)이 발간됐다. 이 책을 엮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국역한 홍기빈 씨가 소장으로 있고 장석준 진보신당 부대표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단체다.

《위기·반란·대안》은 유로존 위기의 원인과 투쟁과 대안을 다룬 흥미로운 글들을 담았다. 한편, 수록된 글들에서는 약점과 한계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중심으로 유로존 위기의 원인과 대안을 살펴본다.

많은 사람들이 유로존 위기의 원인을 금융이 과도하게 팽창한 데서 찾는다. 《위기·반란·대안》에서 장진호 교수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사기에 가까워진’ 증권화라는 금융혁명이 무책임한 대출과 위험을 전 세계로 확산시킨 주범이었다. … 막대한 정부 재정 투입을 통한 ‘민간 부채의 사회화’는 공공 부채와 재정 적자로 전환되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거품이 꺼지면서 유로존 위기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금융이 위기 촉발에서 한 구실을 강조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의 구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거품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원인을 봐야 한다. 즉,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고질병이라고 말한 이윤율(투자 대비 이윤의 양) 저하 문제가 금융 거품의 밑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이윤율은 1980년대에 저점을 친 이후로 충분히 회복하지 못했다.

이윤율 저하와 금융 팽창

이윤율이 낮은 상태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공격했고, 닥치는 대로 대안적 투자처를 찾아 나섰다. 그중 하나가 금융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조셉 추나라가 지적했듯이,

“금융 팽창은 기껏해야 위기를 지연시키는 ‘상쇄 경향’에 불과하며, 그 효과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 같은 단기적 처방의 대가는 지속 불가능한 수준의 부채 확대, 중미 간 무역 불균형과 금융 불균형의 증가, 엄청난 규모의 거품 형성 등 엄청난 경제적 불균형으로 되돌아왔다. 바로 이런 식으로 불균형이 계속 증가했기 때문에, 일단 지연된 위기가 터지자 그 충격은 가공할 만한 속도와 파괴력으로 세계 곳곳을 강타한 것이다.”

요컨대, 지금의 위기는 단지 금융의 위기가 아니라 낮은 이윤율로 말미암은 자본주의의 체제 자체의 위기인 것이다.

게다가 유럽 자본가들은 동아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끼어 있는 처지였다. 단적으로, 동아시아와 미국 노동자들은 프랑스나 독일 노동자들보다 적어도 연 3백 시간을 더 일한다. 유럽 자본가들은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복지에 쓴다는 것을 약점으로 여겼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크리스 하먼은 이미 2007년에 쓴 논문에서 마치 예언자처럼 다음의 전망을 내놨다.

“유럽 자본은 샌드위치 신세가 될까 봐 갈수록 초조해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계에 있는 자본의 친구들이 갈수록 기를 쓰고 복지 혜택, 연금, 노동시간, 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 이런 시도는 유럽에서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한 거대한 규모의 계급투쟁을 촉발할 수 있다.”

실제로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로 대표되는 유럽 지배자들은 위기에 빠진 나라들에 ‘구제’ 금융을 주면서 혹독한 긴축을 강요했다.

그러나 긴축은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파괴할 뿐이라는 게 지난 몇 년간 드러났다.

이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케인스주의* 대안이 힘을 얻었다. 그 핵심은 정부가 나서 돈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반란·대안》에 수록된 스튜어트 홀랜드 교수의 유럽연합 채권 발행 주장도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유로존 민중의 삶을 옥죄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지금의 위기는 돈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돈을 쏟아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듯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케인스주의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 1930년대 대공황은 케인스주의 정책이 아니라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파괴와 살육 속에 ‘해결’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와 달리 혁명적 반자본주의 연합체 안타르시아와 여기에 속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이 내놓은 ‘아래로부터 채무불이행’이 더 나은 대안이다.

‘아래로부터 채무불이행’은 은행들을 ‘구제’하지 말고 노동자들이 주도해서 부채 상환을 중단하고 그 돈으로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보호하자는 주장이다.

그리스 정부는 이자 지급에만 그리스 공무원 전체 임금보다 많은 돈을 쓴다. 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멈춘다면, 학교나 병원을 폐쇄할 필요도, 임금과 연금을 삭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대안이 실현되면 그리스 자본가와 유럽 지배자 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쫓겨나고 부자들은 자본을 해외로 빼돌리려 할 것이다(따라서 은행 국유화와 자본 통제가 필수다).

그럼에도 긴축 정책에서 벗어남으로써 이후 반자본주의 투쟁의 심화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크게 성공한 급진좌파 연합 시리자*를 포함한 많은 논자들은 긴축을 반대하면서도 유로존 탈퇴는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물가가 오르고 실질임금이 하락해 오히려 민중에 더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2년 그리스의 정부 부채는 GDP 대비 1백56퍼센트를 기록했다. 가입 조건으로 정부 부채를 GDP 대비 60퍼센트 내로 억제하라고 요구하는 유로존에 남아 있으면서 긴축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정상화 vs. 사회 변혁 촉진

지금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 곳곳에서 경제 위기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를 두고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는 우리의 요구는 신자유주의나 금융만 문제 삼으며 자본주의의 정상화를 추구하는 방안이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민중의 삶을 방어할 수 있고, 운동이 발전할 수 있고,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가능성을 촉진할 방안이어야 한다.

더구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지적했듯이, 이런 “정책을 현실로 바꿀 만한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능력이 없으면 말짱 황”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이윤에 타격을 가할 능력이 있는 노동계급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반면 《위기·반란·대안》은 스페인 광장 점거 운동 등에서 나타난 운동 형태에 주목하며 노동계급의 중요성은 주목하지 않는다.

광장 점거 운동 같은 거리 시위가 반긴축 운동의 성장에서 한몫한 것은 사실이지만 운동의 요구를 실현하려면 노동계급 고유의 힘이 결정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투쟁이 가장 격렬한 그리스에서 긴축을 추진하는 정부를 계속해서 위기에 빠뜨리고 사회 급진화를 추동한 것은 수십 차례 일어난 노동자 총파업이었다.

추천하는 책

《21세기 대공황과 마르크스주의》

정성진·장시복·크리스 하먼·로버트 브레너·짐 킨케이드 지음, 책갈피, 360쪽, 13,000원

《무너지는 환상: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천경록 옮김, 책갈피, 240쪽, 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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