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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어떻게 해야 잘 될까?

이 글은 교육국이 각 학교 학생위원회가 이끌고 있는 세미나팀들의 경험을 일반화해 보고자 쓴 것이다. 우선 고려대학생위원회와 단국대학생위원회의 경험을 소개한다. 잘된 사례, 모범적 사례뿐 아니라 실수와 오류 모두 학생위원회가 진지한 학생들과의 만남을 돈독히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고려대 학생위원회

우리는 그 동안 두 팀으로 세미나 토론을 진행해 왔습니다. 99학번 이상은 《인간의 역사》(동녘)라는 책으로 학기초까지 토론했고 지금은 《오늘날의 노동자 계급》(갈무리)으로 세미나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팀은 2000학번 위주의 세미나입니다. 지금 2000학번들과는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푸른 나무)로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세미나 팀을 꾸려나가서 저희들이 느낀 점들을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세미나에 관심을 보일 사람들은 우리 곁에 충분히 많습니다. 세미나를 충분히 공개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는 세미나 공개 제안서를 만들었습니다. 제안서에는 무슨 책으로 세미나를 하려는지, 왜 역사에 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게 필요한지, 사람들과의 토론이 왜 필요한지 등에 관한 얘기들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새내기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의 목록도 덧붙였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을 만한 장소다 싶으면 제안서를 크게 확대 복사해 부착했습니다. 거의 모든 학생회실과 커피 자판기 앞에도 붙였습니다.

당원들은 세미나 제안서를 갖고 다니면서 민주노동당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수시로 세미나를 알렸습니다. 2000학번 합격증 배부 때 당보 가판을 하면서 만난 새내기들에게도, 당원들이 속해 있는 학생회나 동아리의 후배들에게도, 점거 농성 때 만난 새내기들에게도 같이 공부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많은 새내기들이 역사 세미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원들이 만난 새내기들 대부분은 학교에서 배운 세계사와 국사책은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다면서 역사에 대한 구체적이고 진실한 토론을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심해지는 빈부격차, 미국 주가 폭락으로 드러나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 부정부패, 환경파괴…. 상당수의 학생들은 도대체 이 사회가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품습니다. 17명 정도의 2000학번들이 세미나에 참여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순전히 세미나 제안서만을 보고 ‘2000학번을 위한 세미나’ 팀에 참여한 새내기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개성이 가지는 심리적 효과는 충분히 있었던 듯합니다. 아무래도 2000학번들은 특히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하고 아무래도 당 이름이 걸려 있는 세미나 팀이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있을 텐데 공개적 제안은 이런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는 데에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의 학생들은 당원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민주노동당에 호감을 갖고는 있지만 당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과 어떻게 연관을 맺을지에 대해 고대 학생위원회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희대 학생위원회 분들이 만든 ‘여우사이’(여기서 우리들의 사상을 이야기하자)라는 모임은 상당히 참신한 시도인 듯합니다.

사람들이 세미나에서 충분히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뜻하고 섬세하고 정감어린 배려도 아주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세미나 커리라 할지라도 세미나 분위기가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새내기들한테는 토론 모임이 바늘 방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첫 모임을 영상물을 보는 자리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희가 선택한 비디오는 작년 인권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는 미국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관한 영화(BIG ONE)였습니다. 그 비디오는 한 진보적인 기자(마이클 무어)가 미국 사장들과의 인터뷰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엮은 것입니다. 나이키 사장과의 인터뷰 장면이 백미인 이 영화는 다국적 기업과 시장을 폭로하는 아주 생생한 사실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2000학번들은 “미국 노동자들은 그래도 우리 나라 노동자들보단 훨씬 나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정말 드림일 뿐이다”라며 상당히 흥미로워했습니다.

이 비디오에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기업가 이름과 친기업주 신문들의 이름 등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새내기들이 생소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얘기들을 간단히 정리해서 2000학번들에게 미리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선배들이 많이 기여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비당원들이 얘기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항상 긴장해야 합니다. 2000학번들이 충분히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품하거나 몸을 비비 꼬는, 또는 조는 새내기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세미나가 끝나고, 어떤 새내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덧붙이자면’하면서 선배들이 얘기할 때 솔직히 조금은 짜증이 나요.”

그러나 2000학번들이 제기하는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그들의 주장을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됐을 때 새내기들은 다른 새내기들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펴거나 그 동안 품어 온 생각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기도 하고, 선배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적극적 지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장 최근의 세미나(《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가운데 ‘계급투쟁’에 관한 부분)는 새내기들이 자그마치 열 가지 정도의 물음을 제기하는 열띤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당원들은 불가피한 일정 때문에 세미나에 참여하지 못한 새내기들과 따로 만나서 어떤 주제들이 토론됐는지 얘기해 주고, 그(그녀)가 원했을 때는 따로 1대 1세미나를 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세심한 노력도 참으로 중요합니다.

세미나에 참여한 2000학번들과 되도록 점심도 같이 먹고 자주 만나면서 일상적인 고민과 대화도 많이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세미나에 관심을 보이는 2000학번들에게 거의 모든 당원들이 책을 선물해 주느라 올봄 상당수 당원들의 호주머니는 썰렁해졌다.

무엇보다 토론을 이끄는 당원들이 구체적인 사례에 근거한 명쾌한 주장을 많이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주장에는 구체적 사례들이 충분히 뒷받침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자 계급의 중심성을 설명할 때는 노동자들이 왜 강력한 사회 집단인지에 관해 간결하게 설명한 뒤 그것을 입증하는 사례를 충분히 들어 주어야 합니다.

낯선 용어, 낯선 역사적 사실을 언급할 때에는 꼭 간단한 설명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개할 만한 관련 참고 도서들을 준비해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쉽고 명쾌하게 주장하는 방법,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하는 방법을 되도록 많이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결론만을 애써 강변한다면 당원들의 주장은 2000학번들에게 당위처럼 들리거나 어떤 경우에 수줍은 2000학번들에게는 자신을 윽박지르는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단국대 학생위원회

등록금 투쟁과 총선 투쟁에 결합하느라 무척 바쁜 나날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쁜 시기일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 토론과 논쟁의 활성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적 토론은 없고 운동만을 좆다보면 그 운동의 생명력은 금방 퇴색되어 버리고 맙니다.

특히, 제도 교육 속에서 지배적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새내기들과 함께 삶의 다양한 부분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아마도 학생위원회 동지들이 개강 후 가장 많이 고민을 했던 부분이 새내기 조직화였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내기들과 세미나를 잘할 수 있을까?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학생회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토론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당연히, 처음 시작은 고등학교 때의 새내기들의 생활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되겠지요. 대부분의 새내기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추스리며 힘들게 입시지옥 터널을 빠져나왔기 때문에 할 말들이 많더군요.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입시 제도의 문제점과 고등학생들의 소외 문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한두 주 지나게 되자, 새내기들이 새로운 고민을 하더군요. 대학 와서 원하는 공부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학기 초 수강신청 대혼란은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면서 분노로 바뀌었고, 고등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수업의 내용은 공부의 흥미를 떨어뜨렸습니다.

처음 술먹고 선배들과 즐기는 것으로 생활을 보내던 새내기들이 점차 삶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일상으로 토론했던 새내기들 중 4명이 토론팀으로 조직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세미나팀 꾸리기의 출발은 바로 일상적으로 새내기들과 토론을 조직하는 일입니다. 더불어 새내기들의 고민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이 문제가 어디서 비롯한 것인지를 토론하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세미나팀의 토론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저희는 토론 주제로 《섹스북》, ‘등록금 투쟁’, 《전태일 평전》, ‘4·13 총선’을 잡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새내기들과의 토론은 쉽게 다가갈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당면한 정치 쟁점에 대한 토론을 병행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좋았던 토론은 ‘등록금 투쟁’과 《전태일 평전》 토론이었습니다. 청년 전태일이 왜 분신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노동자들의 삶과 분노 그리고 무엇보다 저항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태일 열사 분신의 현재적 의미를 고민하면서 자동차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4월 29일 메이데이 집회도 모두 참여할 수 있도록 토론할 계획입니다.

당연히, 등록금 문제는 새내기들에게 최대의 쟁점이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접하게 된 등록금 투쟁은 새내기들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습니다. 우리는 등록금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면서 지지 대자보를 조직했고, 집회에 참여하고 단식 농성장을 방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내기들의 의식이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토론과 실천의 결합이 왜 중요한지를 새내기들의 변화 과정을 보면서 직접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토론이 살아 있는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실천에 기권하지 말아야 하겠지요.

무엇보다 기쁜 일은 세미나팀에 열심히 참여한 한 새내기가 얼마 전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했다는 것입니다. “많이는 모르지만 열심히 배우겠다”는 새내기의 말을 들으면서 앞으로 당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