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익들이 차별금지법을 좌초시키고 학생인권조례에서도 성소수자 관련한 조항을 삭제하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고 있다. 단순히 성적취향이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적, 성적 권리를 “비정상”으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는 역겹기 짝이 없다. 이들은 이러한 차별을 통해 피억압자들을 분열하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 차별에 대해서 무감각하거나 당연하게 여긴다. 심지어 성소수자를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 역겹게도 우익들은 성소수자를 성적으로 타락한 자로 규정하려고 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을 중시한다면, 진정으로 타락한 자는 성을 대상화하려는 우익들이고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성소수자를 고귀하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해방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성소수자를 적극 방어해야 한다. 과거에 내가 취한 모종의 자유주의적 태도, 즉 “성소수자는 개인의 취향 문제다. 나는 이해할 수 없지만 관용적인 태도를 지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민주주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취약하다.

덧붙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성소수자를 반겨야 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

성소수자의 해방은 다수의 성 해방을 뜻하기도 한다. 성소수자의 해방 없이 다수의 성 해방도 힘들 것이다. 즉 성소수자가 해방하지 못한다면 ‘성다수자’들도 서로 사랑하기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소수자가 차별받는다는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는 남자라는 조건 때문에 남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여자라는 조건 때문에 여자를 사랑하지 못한다. 또는 남성의 몸을 가지고 있기에 여성적인 자아를 가져서도 안 되거나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성적인 자아를 가져서도 안 된다. 우익들은 이들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진정한 사랑을 하지 말라고 하며, “자기 몸에 맞는 성적 정체성”을 강요한다.

‘성다수자’의 대부분도 이와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주위의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과 서로 사랑해도 연애하거나 결혼하기 힘들고,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연애하거나 결혼하기 힘들다.

물론 주위의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한 용기있는 분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 힘든 사회적 압력과 시선을 무시하지 못한다.

심지어 남자는 여자와 같은 취향과 성격을 가져서도 안 되고 여자가 남자와 같은 취향과 성격을 가지면 불쾌하다는 인식도 있다. 또 연애 상대나 결혼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우선시하는 경향들도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상대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사랑, 성, 연애, 결혼의 문제에 있어서 이러한 보수적이고 후진적인 시각은 진정한 사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성소수자나 ‘성다수자’는 같은 문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직되고 후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시선을 극복하려면 가장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인 성소수자의 해방이 필요하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성소수자를 반겨야 한다.